[금요 포커스] ‘조난자들’의 냉전 경계 넘기/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입력 : ㅣ 수정 : 2018-03-2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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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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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빈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탈북자 출신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의 저서 ‘조난자들’은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남한 거주 탈북자는 현재 3만명이 넘는다. 이들의 사정을 몇 개의 범주와 유형으로 묶어 이해하는 일은 이들의 개별적 실존의 깊이를 외면하는 폭력이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각자 사연과 처지가 다르고 원하고 분개하는 지점도 다른데, 남한에서 나서 자란 사람은 그것을 지독히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조난자들은 다시 해외로 심지어는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분단체제가 수많은 조난자를 양산하고 있으며,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잠재적인 조난자의 운명을 배면에 깔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화인류학자 정병호 한양대 교수는 이런 현상을 탈북자들이 체득한 초국가적 생존전략(침투성 초국가주의ㆍpenetrant transnationalism)으로 설명했다.

남북 간 이동의 자유와 가족 재결합은 분단 이래 금기(禁忌)였다. 이동의 자유와 가족 재결합은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이지만 분단체제의 냉전정치는 그것을 일관되게 무시해 왔다.

북한이 식량난을 겪는 시기에 많이들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이들은 부지불식 중에 국경과 함께 냉전적 분단질서의 금기도 몸으로 뚫고 나왔다. 최근 가족 재결합을 위해 금단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가는 탈북자들도 생겨났다. 탈북자의 남북한 경계 넘기를 냉전적 시각에서 단순하게 바라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탈북자가 분단 금기선을 넘을 때마다 한쪽은 환영하고 다른 쪽은 배신감을 느끼는 냉전 관점에서는 이들의 절실한 실존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 교수는 정치적 관점이 아닌 인간의 보편 요구와 문화 관점에서 탈북자의 경계 넘기를 바라본다. 탈북과 재입북 현상을 남북의 어느 한쪽 편들기가 아니라 분단냉전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으로 읽었다. 경계 넘기보다 더욱 중요한 현상은 경계 양쪽에 있는 사람의 연계와 이 연결로 사회 변화 잠재력을 키우는 것임을 지적했다.

탈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엄중한 감시하에 있는 북·중 국경을 넘나들면서 사람과 돈과 정보를 유통하고 있다. 이것으로 북한 사회는 변화 요인을 축적하고 있다. 이 현상은 동시에 남한의 냉전적 정치 유산에 도전하는 뜻밖의 결과도 수반한다. 재입북은 물론 재북 가족에게 보내는 탈북자의 송금이나 전화 연락도 엄밀하게는 남한의 냉전적 금기를 깬다. 남한에는 탈북자보다 훨씬 많은 전쟁 실향민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분단 이래의 엄중한 냉전 질서를 수십 년 체화해 분단의 금기와 경계 넘기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된 탈북자의 상당수가 공안사범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재북 가족과의 연락이나 생활비 송금 과정에서 생긴 관련자 간 오해나 다툼이 계기가 되어 관계 법률을 어기는 사범이 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남이나 북이나 냉전질서는 여전히 가족 재결합과 이동의 자유라는 보편적 인권을 허용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 해빙무드가 탈북자를 외면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냉전사고적 사고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관성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문제의 본질은 냉전질서를 벗어난 초국가적 생존전략의 성격으로 인해 점차 냉전적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과 교류의 확대로 분단의 극복과 탈북자들의 초국가적 생존전략에 의한 분단냉전체제에 대한 도전은 궁극적으로 같은 지점에서 만날 것이다.

‘조난자들’의 저자는 탈북자를 향한 편견에는 반공적인 냉전질서의 오랜 관습,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우월의식과 천민자본주의적 행태, 무한경쟁 사회의 인간 소외와 배제가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주도의 일방적인 통일이 전개된다면 북한주민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03-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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