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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밝혀야 할까”…익명과 실명의 경계에 선 피해자들

“어디까지 밝혀야 할까”…익명과 실명의 경계에 선 피해자들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3-19 15:54
업데이트 2018-03-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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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익명 고발이라고 폄하는 안 돼…그 자체로 의미”

#1. “내가 당했던 일을 털어놓고야 싶죠. 근데 그날 어디서 누구와 뭘 했는지 분 단위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무고’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남초 집단에선 그게 더 심해요.”

직장인 A(31·여)씨는 수년 전 회식자리에서 직장상사가 자신의 신체를 더듬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힘입어 회사에 알려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마음을 접었다.

#2. “지금은 없어진 xxxx시스템공학부에서 2000년도 중반에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은 여학생이다. 석사 마지막 학기 때 식사 후 따라간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자고 하더니 이후에 찜질방에 가자는 둥 둘만의 시간을 갖자고 하더라.”

서울의 한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최근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익명 처리한 성추행 폭로 글이 올라왔다. 댓글은 주로 피해자를 위로하고, 가해자를 비판했지만, “이렇게 익명으로 쓰면 진위파악, 상황개선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밝힌 김지은 전 충남도 정무비서처럼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익명이다.

무엇보다 2차 피해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 다리, 두 다리만 건너면 서로서로 아는, 규모가 크지 않은 조직에서는 자신의 신상이 공개됐을 때 돌아올 수군거림이 무서워 피해자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 내기를 꺼리게 된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결국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을까, 도리어 무고죄로 고소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피해자들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을 나열하자니 신상이 알려질까 두렵고, 익명에 기대자니 ‘사실이라면 당당하게 가면을 벗으라’는 요구가 뒤따르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대학강사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성명서를 냈다가 구체적인 피해 사실과 가해자 실명까지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이를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성명에 참여한 여성은 “가해자 실명을 공개하면 피해자까지 특정될 수 있고, 여론이 집중되면서 가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우려가 있었다”며 “실명으로 가해자를 고발하는 것에 부담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이 익명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으니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가해자를 익명화하더라도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므로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피해를 피해로 인식하지 못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가해자도 불분명하고, 시기도 불분명한 폭로도 일종의 분출구로서 의미가 있다”며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실장은 “성범죄 증명 책임을 피해자에게 요구하고,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자들이 익명에 기대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고나 명예훼손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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