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외교책사 정의용…‘한국의 키신저’ 별명도 얻어

입력 : ㅣ 수정 : 2018-03-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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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의중 헤아리며 남북-북미 정상회담 끌어낸 산파역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의 산파역을 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외교가의 ‘뜨는 별’로서 주목받고 있다. 항간에서는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비견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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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문재인 대통령의 명(命)을 받아 움직이는 참모이지만, 불과 일주일 사이 북·미·중의 ‘스트롱맨’ 정상들을 잇따라 만나 한반도 평화외교 해법에 대한 ‘컨센서스’를 끌어낸 외교적 수완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으로 해외언론도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사실 정 실장은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으로만 봤을 때 북핵 문제와 북미간 정무현안에 정통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주로 통상과 다자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지난해 5월 처음 임명됐을 때 국방과 외교 분야를 아우르는 국가안보실장으로서 과연 적임이냐는 시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이력서 상의 평가일 뿐이고 실제 함께 근무했던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르네상스 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능수능란한 수완을 갖췄다는 평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헤아려 큰 그림을 그려내는 전략적 마인드와 치밀하게 일을 완성해나가는 실행력, 그리고 어떤 상대라도 편안하게 대하며 설득을 해내는 친화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외교안보 브레인으로서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사(策士)”라고 말했다.

이번에 남북-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세기의 외교이벤트를 연출해낸 데에는 정 실장이 미·중의 카운터파트와 꾸준히 ‘래포’(Rapport·친밀한 인간관계)를 쌓은 것이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조직보다는 정상 직속 NSC(국가안보회의) 조직이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큰 틀의 외교를 다뤄나가는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면 정 실장이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맺은 친분관계는 한반도 평화외교를 추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자산’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정 실장과 맥매스터 보좌관은 한마디로 ‘통(通)하는 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드 문제로 한미관계가 냉랭하던 지난해 6월 정 실장은 극비리에 방미해 맥매스터 보좌관의 집으로 찾아갔고, 거기서 심야까지 5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화’를 벌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현안이 생길 때마다 ‘정의용-맥매스터’ 라인은 양국 관계의 중요한 소통 창구로 기능해왔다. 서로 ‘케미’가 맞지 않은 듯했던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 꼴인 11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하고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한 것도 두 참모간의 강력한 유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이 양회(兩會)기간임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을 비롯한 ‘외교 빅3’가 잇따라 정 실장을 면담하고 전례 없는 ‘환대’를 해준 것 역시 정 실장과 양 국무위원간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 실장은 지난 12일 시 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양 국무위원과 댜오위타이(釣魚台)에서 3시간에 걸쳐 회담하고 이어 다시 1시간30분에 걸쳐 오찬했다.

정 실장의 주된 이력을 상징하는 ‘통상’ 경험도 고도의 기싸움과 협상력이 요구되는 남북미 삼각 정상외교에서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 통상협상을 하려면 실무적 전문성은 물론이고 ‘밀고 당기는’ 다양한 협상의 기술과 치밀한 전략,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다. 정 실장은 한미간 통상이슈가 크게 부각됐던 1990년대 중반 외무부 통상국장을 맡은 데 이어 한중 ‘마늘분쟁’이 처음으로 터졌던 2000년 통상교섭조정관으로서 통상 갈등을 풀어내는 데 상당한 공을 세웠다. 외무부 대변인을 거치면서 다져진 ‘화술’도 정 실장의 특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주(駐) 제네바 대사로서 국제안보와 군축, 인권 등 다자외교를 해본 경험도 이번 정상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크게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실장은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주 제네바 대사를 마친 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 정 실장은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의원연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국제 정치계에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외교적 수완을 토대로 전인미답의 외교적 성과를 거둬낸 정 실장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정상 차원의 ‘의지’를 살려 역사적 첫 북미 정상회담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실무를 중심으로 하는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외교적 후속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등 정통 외교관계 부처에 힘을 더 실어주고 대미·대중 외교의 ‘실력파’들을 확충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정 실장은 1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대선에 여념이 없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데 이어 14일 유리 아베리야노프 러시아 안보회의 제1부서기(국가안보실 부실장),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 등을 만난 뒤 귀국길에 오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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