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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또 다른 ‘유리그릇’/이지운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또 다른 ‘유리그릇’/이지운 국제부장

이지운 기자
입력 2018-03-12 17:52
업데이트 2018-03-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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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운 논설위원
이지운 논설위원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미국쪽 분위기가 의외로 험악하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간 회담을 촉구해 온 민주당쪽, 진보쪽 걱정이 더 심한 듯 보인다. 회담에 나설 이가 단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어서인가 싶을 정도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핵 문제를 논의하는) 그 위험성을 모른다”고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경험 있는 외교관들이 국무부를 많이 떠나 지금은 부족하다. 외교관 없이는 외교를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유엔 주재 미국대사였던 빌 리처드슨은 “(북한과의 협상은) 리얼리티 TV쇼가 아니다. 적어도 핵무기 20개로 미국을 위협하는, 예측할 수 없는 지도자와의 협상”이라면서 ‘도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었던 네드 프라이스는 “이 회담이 폭넓은 전략 없이 진행되면 김정은을 위한 선전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우려를 NBC방송의 진단으로 종합해 보자면 “외교적 해법을 주장했던 사람들조차 트럼프 행정부가 냉전 이후 가장 도전적이 될 수 있는 이번 핵 협상에 대해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협상에 나섰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가 비난했던 전임 대통령들처럼 북한이 양보했다는 착시에 또다시 빠질 위험이 여전하다”고도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만은 옳은 일을 했다”는 뉴욕타임스(NYT)도 “변덕스럽고, 복잡한 안보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준비가 덜 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 앉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했다.

회담의 ‘추가 전제조건’을 둘러싸고 지난 주말 백악관이 벌인 작은 소동은 이 같은 우려와 압박에 대한 부담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북한에 의한 구체적인 조치와 구체적인 행동을 보지 않고는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가 휴일이 끝나기도 전에 백악관이 이를 정정했다.

미국 식자들의 글과 말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고민이 상당히 깊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중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핵화 로드맵은 무의미하며, 중국으로 하여금 로드맵을 수용케 하려면 (중국이 원하는) 미·중 무역카드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개중 하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장기 집권에 대한 자국 내 엘리트 집단의 불만 때문에 ‘트럼프 거들기’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서 나온 것이다.

식자들 사이에서는 회담 실패에 대한 ‘공포’도 번져 가는 중이다.

“유의미한 성과가 나지 않으면 군사적 충돌을 더욱 앞당기게 될 것”이라거나 “트럼프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끼칠 것이며, 이로 인한 부작용도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벌써부터 “기대감을 낮춰야 한다”는 주문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이 ‘도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실패에 뒤따를 후과를 고려해서일 것이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5월 북·미 정상회담 자체가 열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까지 전망한 것은 이런 모든 것을 반영한 분석으로 여겨진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은 북한만이 아닌 듯하다.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앉히기까지 속 썩을 일이 적지 않아 보인다.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여간 중요하지 않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jj@seoul.co.kr
2018-03-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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