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포커스] 꽃으로 하는 아름다운 통일 준비/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입력 : ㅣ 수정 : 2018-03-0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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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놀랍다.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입춘이 오더니 어느새 봄이 우리 곁에 내려앉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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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얼었던 땅은 성글성글 녹아내리고 삐죽삐죽 새싹이 올라온다. 여린 초록 생명들은 어둡고 굳었던 땅속에서 겨울을 버텨 내고 곱디고운 꽃들을 피워 내고 있다. 지난겨울 추위에 떨며 화사한 봄이 올까 싶었는데 이웃 동네에선 벌써 복수초 개화 소식이 들린다. 이번 주엔 수목원 산자락에도 그 환하고 반질한 노란 꽃송이가 활짝 핀 모습을 보길 고대해 본다.

날씨만큼이나 극적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도 그 하나다. 이전까지 펼쳐지던 남북 긴장 상황이 올림픽을 계기로 급작스러운 변화를 가져왔고, 올림픽은 평화적·성공적이라는 극찬 아래 끝났다. 한 신문 칼럼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오길 잘했다. 옷깃에 자유를 묻혀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유년 시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는 방법이나 시기, 모습 등은 다양하지만 ‘평화통일’이라는 국민의 바람은 통일돼 있지 않나 싶다.

한국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강원도 양구 펀치볼 자락엔 ‘DMZ자생식물원’이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동서생태축이자 1000종이 넘는 비무장지대 식물과 북방계 식물들을 보전하고 있다. 황무지였던 옛 계단식 논을 식물원으로 만든 이곳에는 비로용담, 제비동자꽃을 비롯해 남쪽에서 보기 어려운 백두산떡쑥, 황산차, 좁은잎사위질빵과 같은 진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생태적 적지에서 자란 탓인지 꽃을 피워 내면 빛깔들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DMZ자생식물원은 DMZ 지역 등지에서 모든 씨앗을 하나하나 받아 7년간 심고 가꾼 식물들로 조성됐다. 유전적 기반 자체가 다른 지역에서 이입된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자생식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DMZ식물원을 관람한 영국 이든 프로젝트의 저명한 식물원 전문가인 마이클 몬더 박사는 DMZ에서 식물을 찾아 조사하고 씨앗을 심고 결실을 기다려 보전하고 가꾸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식물원의 정신’이라고 감동을 표한 바 있다.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선 각자 분야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황폐해진 북쪽 산야에 나무를 심는 일이 급선무이다. 울창한 산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산림청은 가급적 북쪽 가까운 곳에 양묘장을 만들어 묘목을 준비하고 있다. 산림을 조성할 때 DMZ자생식물원의 북방계 식물들은 지금은 사라진 다양한 식물들, 생물다양성을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식물로 증식된 개체로 자연을 가꾸는 일은 꽃으로 하는 ‘가장 아름다운 통일 준비’다.

꽃들이 만들어 내는 통일 준비는 또 있다. DMZ 철책 주변은 작전상 풀과 나무가 무성하면 안 돼 제거작업이 매년 행해졌다. 자라면서 땅을 덮는 지피식물이 없는 땅은 훼손이 일어나기 쉽고, 매년 병력이 반복 투입되는 등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면을 피복하는 식물은 대부분 외국종이다. 그러나 생태계 보고인 이 지역에 외국 식물들을 도입해 자라게 하는 것은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국립수목원은 육군본부와 함께 DMZ식물원 식물 가운데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있는 식물을 키워 복원하는 시범 연구를 시작했다. 삭막한 철책 주변에 우리 식물을 심고 그들이 꽃을 피워 내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이를 바라보는 북측 마음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이념과 갈등을 초월한다. 이 준비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DMZ 155마일에 각각의 지역 유전적 고유성과 특색을 가진 식물카펫이 깔린다면, 통일 이후 이곳이 세계적 생태관광 명소로 도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쯤되면 꽃으로 하는 아름다운 통일 준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각자 위치에서 마음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하다 보면 또 어떤 기적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한반도에 가지각색 기화요초와 통일의 평화가 깃들길 기대해 본다.
2018-03-0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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