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의 경제 인사이트] 통상압력 파고가 반도체로 밀어닥치면

입력 : ㅣ 수정 : 2018-03-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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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 마이크론사(社)와 함께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여러 산업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체감경기가 악화되고 있음에도 반도체는 선전하며 3% 경제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반도체 업체들은 비용 구조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기술력을 확보해 국제경쟁력을 높여 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호황에 올라타면서 거시지표 개선을 이끌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일본의 반도체도 지금 우리와 비슷했다. 오히려 당시 일본 경제가 반도체에 의존한 정도는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덜했다. 그러나 미국의 통상압력이 본격화되고 일본 반도체산업이 휘청거리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지던 1986년 미ㆍ일 간에는 반도체 무역협정이 체결되는데, 일본은 저가판매, 소위 ‘덤핑’ 수출을 중단하고 5년 안에 국내 반도체 시장의 20%를 해외 업체에 내주기로 약속한다. 그 후 일본 반도체는 경쟁력을 잃고 쇠락한다.

현재 우리도 여러 부문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을 거세게 받고 있다. 미국을 석권하던 우리 가전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의 수입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관세를 부과하는 조처에 서명했다. 철강도 대미 수출을 사실상 중단시킬 수 있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화학업체도 미국 정부에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요청하며 통상압력을 높이고 있다.

결국 전자ㆍ철강ㆍ화학 등에 대한 통상 파고는 이미 시작됐고, 주요 수출품 가운데 자동차와 반도체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임을 고려하면, 다음 타깃은 반도체여도 놀랍지 않다. 다행히 현재까지 반도체 호황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품목 중심으로 가격 정체가 나타난다. 더구나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되는 내년 이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 중국이 생산설비를 확충하는 분야가 우리의 핵심인 메모리 부문이기 때문이다.

국제경쟁에 노출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도체 경기 하강과 미국 통상압력이 결합되면 그 노력에도 감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반도체의 국제 가격 하락이 본격화되면 그 자체가 미국의 통상압력을 높일 수 있다.

일본 반도체에 미국의 통상압력이 밀어닥쳤던 1980년대는 전반적으로 국제 반도체 경기가 약화되던 시기다. 일본이 특별히 미국 기업을 곤경에 빠뜨리고 자국 수출을 확대하려 ‘덤핑’ 저가공세를 벌였다기보다 국제 반도체 가격의 하락기였고 일본 기업 역시 저가로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즉 중국의 반도체 진출 본격화로 국제 가격 하락이 시작된다면 우리 반도체가 미국 통상압력에 노출될 위험은 더욱 커진다.

최근 미국 통상압력에 대해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같은 대응이 논의되고 있다. 국제기구를 통한 중재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미국이 WTO 같은 다자간 체제를 통한 접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러한 접근은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

결국은 여러 창구를 통해 적극적인 대화와 설득으로 한국과의 무역과 우호적인 경제협력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미국 국내에서 그러한 여론이 조성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일본도 당시 해결의 출발은 반도체 통상압력이 미국의 해당 산업 일부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이를 사용해 다른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더 많은 미국 기업에는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러한 이해와 해결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이미 몰락한 후였다.

그래도 아직은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력도 중국의 저가 대량생산도 본격화되지 않았다. 미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해 우리와 미국의 이익을 조화롭게 만들어 가고 어떻게 이를 설득해낼 것인지 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가 반도체에 의존하는 정도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더욱 절실해진다.
2018-03-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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