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캐치볼/이승희

입력 : ㅣ 수정 : 2018-02-0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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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써니 킴(100×125㎝, 캔버스에 아크릴)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쿠퍼유니언대 회화과 학사.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대학원 졸업.

▲ Sunset/써니 킴(100×125㎝, 캔버스에 아크릴)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쿠퍼유니언대 회화과 학사. 뉴욕시립대 헌터칼리지대학원 졸업.

캐치볼/이승희

공을 던진다

어디에도 닿지 않고

그만큼 나의 뒤는 깊어진다

내가 혼자여서 나무의 키가 쑥쑥 자란다

내가 던진 공은 자꾸만 추상화된다

새들은 구체적으로 날아가다가 추상화되고

생기지 않은 우리

속으로 자꾸만 공을 던진다

거짓말처럼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오는 것들은 일렬로 내 앞을 지나간다

칸칸이 무엇도 눈 맞추지 않고

잘 지나간다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추상적이다

나는 불빛 아래에서 살았다 죽었다 한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공을 던진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캐치볼은 혼자 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어우러져 공을 던지고 받는 게 캐치볼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 시에는 혼자 공을 던지는 소년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내가 혼자여서 나무의 키가 쑥쑥 자란다”는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소년의 고독한 성장사다. 공을 던지는 것은 무엇인가. 캐치볼은 인생의 쓸쓸함에 대한 은유인가. 캐치볼을 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캐치볼이라는 단순한 놀이에서 살아 내는 일의 추상을 기어코 봐 버린 시인의 돋보이는 시력(視力)에 감탄한다.

장석주 시인
2018-02-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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