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길섶에서] 도루묵/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도루묵/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8-01-31 22:46
업데이트 2018-02-01 00:5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오래된 까탈이 민망해질 때가 있다. 먹지 못했거나 않았던 음식을 아주 오랫동안 잘 먹었던 것처럼 먹고 있는 순간이다. 장례식장의 국밥이 이즈막에는 그렇다. 허기가 져도 문상 자리에서는 좀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죽음의 비감은 언제나 차갑고 낯설어 식욕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국밥이 맛있다. 흰밥 한 그릇 꾹꾹 말아 비우고, 일회용 접시에 쪼그라진 마른반찬에도 입맛이 다셔진다. 소심한 입맛이 갑자기 언죽번죽해졌을 리는 없다. 시간이 저절로 그려 주는 삶 안쪽의 무늬들이 있다. 생의 질서에 줄 서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알배기 도루묵 한입에 딸아이는 기겁을 한다. 미끈거리는 도루묵 알이 내게는 언제부터 감쪽같이 겨울 별미였을까. 톳나물의 오돌거리는 맛, 물미역의 물컹거리는 맛. 오돌거려도 겉돌지 않고, 물컹거려도 비켜나지 않는 그 맛에 입맛 길들이자고 매달린 적 없다.

가만히 두면 그렇게 되는 일들이 많다고. 기를 쓰지 않아도 삶의 쌈지를 채워 주는 것들이 있다고. 도루묵의 위로가 오늘은 밥상에서 조근조근.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8-02-01 31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