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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없다’ 법원 안도 분위기 속 ‘추가조사’ 후폭풍

‘블랙리스트 없다’ 법원 안도 분위기 속 ‘추가조사’ 후폭풍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1-22 13:41
업데이트 2018-01-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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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조사위 ‘사실무근’ 발표와 같은 결론…판사 동향파악 문건 다수 발견일선 판사들 반응 주목…제도 개선·재발 방지·행정처 개편 대책 불가피

지난 1년간 사법부를 둘러싼 안팎의 갈등을 키우는 의혹의 핵심이었던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심했던 법원으로서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대신 판사 사회의 동향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법원행정처의 문건이 다수 발견되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 개선 및 재발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새로운 과제가 제시됐다.

지난해 11월 20일 구성된 후 64일간 조사를 벌여온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지 않자 법원 구성원 사이에서는 일단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칫 끝 모를 혼란으로 몰고 갈 사안이 일단락되는 수순으로 접어들 개연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추가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완책을 마련하고 이와 별개로 앞으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당초 추진하려던 사법제도 개혁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도 나온다.

추가조사를 둘러싸고 일각에선 각종 의혹만 난무한 채 블랙리스트의 실체라고 볼 단서들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애초부터 무리한 조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면서 전·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을 냈는데도, 무리하게 추진된 추가조사였기 때문에 추가조사를 요구한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이를 받아들인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다소 멋쩍은 결과 아니냐는 해석이다.

하지만 추가조사위의 조사가 더욱 명확한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법원 안팎의 분위기에 걸맞게 일정 부분 문제점을 찾아내 지적한 부분은 소기의 성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추가조사위는 블랙리스트 대신 “인사나 감찰 부서에 속하지 않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해 작성한 문건이 다수 파악됐다”고 밝혀 기존 사법부의 관행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정 판사들의 성향을 정리한 후 이를 인사에 반영하는 등 불이익을 준 정도는 아니지만,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법원의 판결 경향을 비판한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추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정처의 동향파악 정보수집은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일선 판사들의 회의체인 판사회의 및 사법행정위원회에 대한 견제와 개입이 시도됐다. 2016년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의 개선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핵심그룹이 다수 판사의 호응을 얻지 못하도록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문건이 2016년 2월 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선출과 관련해서는 특정 판사가 선출될 경우 문제점을 검토하고, 그 대응전략으로 다른 판사의 선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 문건도 발견됐다.

2016년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추천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예상 후보자들을 정치 성향으로 분류한 문건도 있었다.

개별 법관에 대한 동향파악도 이뤄졌다.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소모임인 ‘인권을 사랑하는 판사들의 모임’(인사모)의 활동내용을 파악하고, 인사모가 외부 학술단체와 공동으로 준비한 학술대회를 축소하는 등의 방안이 행정처 차원에서 논의됐다.

또 행정처 기조실이 2016년 8월 작성한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에는 법관의 업무영역 외 언행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므로 공식적·비공식적 방법으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도록 제시했다.

일선 판사들이 포털 등에 개설한 익명 게시판 회원현황과 가입절차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논의 주제에 대한 현황을 파악해 보고한 문건도 발견됐다.

대법원이 추진한 상고법원제도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검토한 문건도 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사건의 2심 선고 다음 날 작성된 문건에서는 선고 전 담당 재판부의 동향과 법원 내부 반응 등을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행정상 필요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동향파악을 했다면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추가조사위는 “대응방안의 실행이나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로 부적절한 사법행정권의 행사이고, 부당한 개입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문건 작성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작성 경위와 목적, 지시 및 보고 체계 등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 동향파악 업무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문건을 작성한 점도 지적된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판사들에 대한 동향파악이 관행적으로 이뤄졌고, 이를 법원행정처 및 고위 법관들이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타나 법원의 자정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다.

법원행정처에 대한 대대적 개편도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행정처의 기능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보좌와 일선 재판업무 지원으로 한정하고, 인력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결정 과정에 일선 판사들의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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