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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젖당 분해 효소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문소영 금융부장

[데스크 시각] 젖당 분해 효소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문소영 금융부장

문소영 기자
입력 2018-01-04 17:52
업데이트 2018-01-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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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논설위원
문소영 논설위원
진화생물학에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연돌연변이체를 포함하는 개체군에 선택적 증식을 재촉하는 생물적, 화학적 또는 물리적 요인을 말한다. 돌연변이 형질이 유리한 환경에 노출되면 급속하게 선택적 증식을 해 적응해 나간다.

선택압을 최근 번역된 마를린 주크의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위즈덤 하우스 펴냄)에 나온 사례로 설명해 보겠다. 보통 포유동물은 유아기를 마치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사라져 젖당이 몸에 들어오면 복통이나 장염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흔히 ‘우유 알레르기’라는 증상이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도 젖당을 분해하는 활성형 효소를 가진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약 30% 정도가 된다. 아프리카 수단 등과 북유럽 등에 거주하던 인류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피해 소 등을 키울 수 있었던 지역으로, 물 부족으로 가축에서 우유를 공급받아야 했던 인류다. 즉 우유를 마실 수밖에 없던 지역의 인류는 강한 선택압을 받아 그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고 확산했다는 것이다.

특정한 유전자의 유전 빈도가 변화한다는 ‘유전자 부동’ 개념이 개입하면 젖당 분해 효소를 가진 인류의 탄생 가설을 더 확실히 설명할 수 있다. 돌연변이는 우연한 것으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 그러나 우유를 물 대신 마셔야 하는 아프리카 사막이거나 부족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을 유제품으로 대체해야 하는 북유럽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었고, 마침 선택압이 강한 지역이었다. 결국 돌연변이 유전자는 꾸준히 확장해 독립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광범위한 유전적 확산의 시작은 멀리 가 봐야 2만년 전, 짧게 잡으면 2000년 전에 불과하다. 500만년 전 인류 ‘루시’로부터 살펴보면 눈 한 번 깜빡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알려진 자연선택의 개념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고, 선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한 종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다윈주의’는 승자 독식과 같은 탐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하기도 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도 “인간 종의 역사는 전쟁이다”라고 인간의 본성을 갈등과 폭력에 맞추었다.

하지만 최근의 생물학과 인류학의 연구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된 수단은 탐욕과 폭력, 극단적 이기심의 실현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와 협력이었다고 다양하게 증명하고 있다. 영장류 행동분석 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인류는) 긴 세월의 평화로운 화합 속에서 짧은 폭력적 대립이 있었을 뿐”이라며 “인간의 본성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으로 볼 때와 우리의 밑바탕에 협동과 유대 의식이 있다고 볼 때 세우는 사회의 경제선은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등을 장황하게 끌어온 이유는 “우리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 환경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인류학자 앨런 로저스의 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변화시킨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시험대에 올랐다. 주변에서도 ‘알바’를 해고한다. 알바를 고용하고 적자를 감당하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1만원은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한국의 사회적 선택압일 수 있다. 이 선택압에 지혜롭게 적응해 간다면 한국 사회가 선진국과 다른 방식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지도 모른다. 마치 젖당 분해 효소를 갖춘 30% 인류의 시작처럼 말이다.

symun@seoul.co.kr
2018-0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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