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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베스트팔렌조약과 120점/이제훈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베스트팔렌조약과 120점/이제훈 정치부 차장

이제훈 기자
이제훈 기자
입력 2017-12-25 23:38
업데이트 2017-12-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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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정치부 차장
이제훈 정치부 차장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은 주권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국제법적 의미를 갖는다. 나라의 영토가 크든 작든 모두가 같은 주권을 갖고 있다는 개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즉 주권을 가진 나라는 그 국가 안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완전한 결정권을 갖는다는 말이다. 당연히 다른 나라의 조언이나 강압 등의 외부적 요소는 배제할 수 있게 됐다.

굳이 350년도 더 된 이 조약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얼마 전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때문이었다.

국빈 방문에서 이뤄지는 정상회담은 근대국가 체제에서 국가 간에 존재하는 가장 고도의 상징적 정치 행위다. 당연히 국빈을 초대하는 국가는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을 겪은 한국과 중국은 지난 10월 31일 양국 협의문을 발표하고 문 대통령도 중국 국빈 방문을 결정해 갈등을 일단락 짓는 듯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복기해 보면 과연 중국이 희망대로 사드 문제를 접고 문 대통령을 한 나라의 주권국가 대표로 ‘국빈’ 대접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우선 중국이 마련한 일정이나 행위를 잘 살펴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공식 만찬 외에 눈에 띄는 일정이 없었다. 정상(Head of State)의 식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외교행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의도적인 하대가 은연중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시 주석과의 공식 만찬 전에 다른 중국 인사와 식사하지 않는 관행을 고려하더라도 지난 10월 제19차 공산당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상무위원에 선출된 핵심 인사와의 상견례 또는 식사 자리가 없었던 점이 그래서 뼈아프다. 문 대통령이 함께 식사한 천민얼 충칭시 서기는 시진핑 집권 2기 상무위원에서 빠진다.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조만간 교체되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봉합됐다던 사드 문제에 대해 시 주석은 확대정상회담에서 “모두 아는 이유”라고 간접 언급했지만 결국 소규모 정상회담에서 사드를 직접 언급했다. 사드는 현재진행형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달 전에 ‘사드 봉인’ 운운했던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은 국제 정세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거나 허울 좋은 희망 사항을 피력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문 대통령을 수행해 공식 취재활동을 벌이던 사진기자가 중국 경비업체 직원에게 폭행당한 것은 국빈 방문의 성과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수행한 기자를 폭행하는 것은 손님을 불러놓고 손님과 함께 온 동행인을 폭행한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적절치 않은 단어 사용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라고 말했다.

또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언급했다.

주권국가의 대표가 스스로를 ‘소국’이라 칭하고 중국을 ‘대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선의를 갖고 해석해도 지나쳤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1위다. 결코 소국이 아니다.

더한 문제는 바로 참모진에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번 방문성과를 “100점 만점에 120점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방중 결과를 냉정히 분석해 보고해야 할 참모가 스스로 120점 운운해선 험난한 국제관계를 슬기롭게 헤쳐가기 힘들다.

parti98@seoul.co.kr
2017-12-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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