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왓슨, 빛과 그림자

[임한웅의 의공학 이야기] 왓슨, 빛과 그림자

입력 2017-12-18 22:08
업데이트 2017-12-19 00:1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 대국을 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최근에는 세기의 대국 뒷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왔다. 영화 속 고민에 빠진 이세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은 인류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비쳐졌다.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지는 직업들이 열거되고 자신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미지 확대
임한웅 한양대병원 안과 교수
임한웅 한양대병원 안과 교수
의료계도 마찬가지였다.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에 의해 의사 10명 중 8명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올 만큼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IBM의 의료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의 국내 도입은 이런 예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왓슨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환자들이 의료진의 결정보다 왓슨의 결정을 더 따른다는 식의 자극적 보도가 나오며 의료 현장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후 여러 병원이 잇달아 왓슨 도입을 발표했고 일부 진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크지 않다.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왓슨이 획기적 치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환자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왓슨이 의료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왓슨을 이용한 진료는 의료수가 항목이 없고 환자 서비스 개념으로 운영하게 됐다.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은 이미 의료계 내부에서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인도의 한 병원에서 지난해 12월 발표한 암 환자 1000명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환자의 20% 이상에서 의사와 왓슨의 치료 권고안이 달랐다. 특히 폐암의 경우 17.8%에서만 왓슨과 의사의 치료 권고안이 일치했는데, 이는 왓슨의 도입에 대해 좀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왓슨에 대한 평가는 이전 자료에 근거한 연구를 통해 인간 의사의 결정과 인공지능 의사의 결정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는 얼마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제시하는지에 대한 학술적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검증받지 않고 더군다나 의료기기로 인정되지도 않은 소프트웨어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쓰는 것은 비록 참고만 하는 것으로 한정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한편으로 인공지능의 의료 분야 도입은 사회적 측면뿐만 아니라 학문적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검증된 사실에 근거한 진단이나 치료보다 경험과 같은 비과학적 판단에 의존했던 의료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또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모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의료혁신을 기대하게 한다. 인공지능의 의료 분야 활용은 질병 예측이나 진단 등 영역이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통해 사람과 관련한 어떤 물건이든 실제 생활에 적용하기 전까지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에서 철저한 검증은 필수인데 기술 개발에 몰두한 나머지 이런 과정을 생략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의료 인공지능의 강점이자 무서운 점은 새로운 의료 데이터를 습득해 스스로 인간의 직접적 통제 없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의료용 로봇 같은 새로운 의료기기들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현재 의료 제도에서 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17-12-19 29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