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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중국의 대국굴기와 디지털 만리장성/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의 대국굴기와 디지털 만리장성/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17-12-17 17:30
업데이트 2017-12-1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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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중국 자료조사 중에 뜻하지 않은 문제로 열흘 넘게 더 체류하게 됐다. 영사관과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서류상의 일은 마무리하고 밀린 업무와 바쁜 학기 말의 일정 때문에 노트북을 연 순간 막막함이 밀려왔다. 구글에 기반한 모든 클라우드 및 이메일 계정에 접근이 안 되는 것이다. 구글 이외에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와 주요 사이트 접속도 불통이라 한국과의 연락도 여의치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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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지금 세계의 정보혁명은 구글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구글과 그에 파생되는 여러 서비스로 빠르게 하나가 되고 있다. 중국도 이러한 정보혁명의 시대에 아주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지금 중국에서는 노점상들도 알리페이라는 앱으로 결제를 할 정도이며, 노인들도 웨이신과 같은 메신저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중국은 자국 정보기술(IT)산업 보호를 이유로 15억에 달하는 그들만의 정보체계를 구축했다. 가히 ‘디지털 만리장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서양의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되 정보 유입은 차단하며 자신들만의 디지털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19세기 말 근대화 시기에 등장한 ‘동도서기’(東道西器·동양의 사회는 유지한 채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한다는 뜻)의 21세기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 문명은 집약적 농경이 가능한 황하 유역 황토지대라는 지리 조건에 한문이라는 독특한 문자,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그 세력을 지속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중국을 정복한 이민족들도 결국은 빠르게 중국화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중국은 동아시아라는 지리 환경에서 매우 성공적인 문명 체계였음은 의심할 바 없다. 하지만 21세기 정보혁명시대의 상황은 다르다. 중국은 주변의 아시아뿐 아니라 거미줄처럼 정보 네트워크가 형성된 전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국경 없는 정보의 교류가 무한대로 이어지는 21세기에도 이렇게 중국의 폐쇄적인 체계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엄청난 인구에 기반을 둔 경제력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은 자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대일로’ 정책으로 세계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거대한 인구를 감당하는 경제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국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사방으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외부의 정보를 차단하는 정책을 펼쳐 결국 세계는 구글로 대표되는 정보체계와 중국의 정보체계로 양분되는 역설적 상황이 됐다. 중국이 21세기에 진정한 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정보체계에 대한 자기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있다.

중국 디지털 만리장성의 또 다른 문제는 콘텐츠의 제작과 공유에 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간은 일하는 시간은 급격하고 줄고 있다. 그리고 직접 정보를 찾고 판단하는 웹사이트 중심의 컴퓨터 시대에서 이미 사용하기 쉬운 지식으로 가공된 어플리케이션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즉 얼마나 양질의 정보 수준에 기반을 둔 정보체계가 제공되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산술적으로 말한다면 15억 중국만의 지식과 나머지 세계의 45억 인구가 만들어 내는 지식의 수준은 궁극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고대 역사의 원동력은 문명 간 교류의 힘이었지 문명 차단의 힘은 아니었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문명의 교류를 주도하고 정보를 물 흐르게 하는 자들이 주도권을 차지했다. 베이징대 정예푸 교수는 저서 ‘문명은 부산물’에서 문명의 발달은 마치 들어온 문을 잠그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한 번 길에 접어들면 되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15억 인구를 에워싸는 거대한 디지털 만리장성이 쌓여 가는 모습은 지난 5000년 중국 문명의 축소판인 듯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힘을 주변으로 확장하면서도 정작 문화적으로 폐쇄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중국 문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재편되는 21세기의 정보사회에서 과연 중국은 대국굴기(세계의 강국으로 일어남)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디지털 만리장성 속에서 갈라파고스섬처럼 고립될지 주목된다. 모든 선택은 중국에 달려 있다.
2017-12-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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