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기자의 소리통] SNS 마녀사냥과 시인의 비극

입력 : ㅣ 수정 : 2017-12-0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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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상이 무너지고 가슴에 주홍글씨가 새겨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사흘이었다. 그는 ‘2014년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2015년 시작작품상을 받은 촉망받는 시인이었다.
이현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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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정 정치부 기자

모든 일은 지난해 10월 19일 트위터에 “미성년자인 저는 지난해 저보다 스무 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박진성 시인임을 밝힙니다”란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또 다른 이의 비슷한 폭로성 글이 꼬리를 물었다. 국내 일부 언론은 10월 21일 시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해명할 기회는 주지 않았다. 마녀사냥이 시작됐고 시인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무참히 파괴됐다. 집 앞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그는 고통의 기억을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기록했다.

“창문 바깥으로 수십 명의 사람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고 몰래 열어 본 창틈으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집에 범죄자가 산대. 흉악한 범죄자가.”

검찰은 지난 9월 이 사건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온라인 유목민은 낙인찍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살하고 싶지 않으세요’라며 도를 넘는 악성 글을 올린 이도 있었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시인은 지난 2일 “지쳤다. 제가 저의 결백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극단적 시도를 했다.

자제력을 잃고 폭주하는 일명 악플러들은 SNS 공간에 사람을 전시하고 발가벗겨 포르노적으로 소비하고서 결국 파괴한다. ‘통신망으로 연결된 가상 사회의 구성원’이란 공동체적 의미를 갖는 단어 ‘네티즌’은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승냥이떼와 같은 고립된 개인의 ‘무리’이며 목소리가 아닌 ‘소음’일 뿐이다. 때론 정의를 표방하나 인간애와 공존하지 않는 정의를 우린 정의라 부르지 않는다. 악성 댓글에 멍든 이들이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다.


세계와 관계 맺기를 하며 고유명사로 살아온 시인이 한순간 ‘성범죄자’란 일반명사가 돼 갈가리 찢기고 존재가 거처할 곳을 잃었을 때 마주했을 그 고통의 무게를 짐작한다. 극단적 시도를 하기 전 “단 하나의 눈동자만 있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쳤다”고 한 그의 말이 묵직한 돌덩어리로 남았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그가 자신이 선 땅을 딛고 다시 한번 바깥을 향하길 바란다. 온갖 억측과 싸워 앞으로 살아갈 생과 맞바꾸려 했을 만큼 절실히 바란 진실을 찾고 길을 찾길 바란다. 자살로는 결코 결백을 입증하지도 그 무엇을 이룰 수도 없다. 그저 비난하던 이들을 지극히 짧은 시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할 뿐이다. 지난해 3월 학내에 거짓 대자보를 붙여 교수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한 제자는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교수는 이 세상에 없다. 가족에게는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SNS를 떠도는 과다한 정보는 거짓과 진실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때론 거짓마저 진실로 둔갑시킨다. 직접 돌을 던지진 않았으되 심정적으로 동조한 모두를 공범으로 만든다. 더 많은 정보가 꼭 진리로 귀결되진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hjlee@seoul.co.kr
2017-12-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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