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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테니스 세계 4위 도키치의 폭로 “아버지가 날 지옥으로”

한때 테니스 세계 4위 도키치의 폭로 “아버지가 날 지옥으로”

임병선 기자
입력 2017-11-27 10:41
업데이트 2017-11-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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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날 지옥으로 밀어넣었다.”

옛 유고 연방 오시에크(현재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 호주로 귀화했다가 나중에 아버지의 국적을 좇아 세르비아 국적을 선택한 옐레나 도키치(34)는 열여섯 살이던 1999년 윔블던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 마르티나 힝기스를 제압해 명성을 떨쳤다. 한때 세계 4위에 올랐고 2000년 윔블던 준결승에도 오르며 16년 동안 프로 선수로 활약한 그녀가 아버지 다미르로부터 당한 끔찍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폭로했다. 최근 테니스계에서 명성을 얻기까지 엄청난 고통을 치러야 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낸 그녀는 26일(현지시간) 영국 BBC 월드서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훈련을 잘 소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죽벨트로 채찍질 당하거나 정강이에 발길질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호텔에서 쫓겨나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여느 아빠와 다름없었던 다미르가 테니스를 시작한 여섯 살 때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돌아봤다. 욕설을 서슴치 않았고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 윔블던 준결승에서 린제이 데븐포트에게 지자 아버지는 호텔에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저녁에는 윔블던의 선수 대기실에서 지냈다. 자신을 찾지 못하길 바라며 소파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청소부가 밤 11시쯤 찾아내는 바람에 다른 숙소를 찾았지만 돈도, 신용카드도 없었다.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강요를 받았다고 폭로한 옐레나 도키치가 선수로서 주목받은 계기가 됐던 1999년 윔블던 대회에서 마르티나 힝기스를 꺾었을 때의 모습. AFP 자료사진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강요를 받았다고 폭로한 옐레나 도키치가 선수로서 주목받은 계기가 됐던 1999년 윔블던 대회에서 마르티나 힝기스를 꺾었을 때의 모습.
AFP 자료사진
다미르는 같은 해 US오픈 때 연어스테이크 조각이 작다고 항의하며 소란을 피워 6개월 동안 모든 여자대회 출입을 정지당했다. 연초에는 윔블던 대회 도중 세인트조지 깃발을 온몸에 휘감고 코트에 난입했고 관중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기자의 손전화를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그녀는 언론에도 이해 못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행동을 재미있어 하거나 농담으로 넘기곤 했다는 것이다. 도키치는 “14~15세 소녀가 이런 사람과 한 집에 사는 건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무렵 어머니가 크로아티아 출신이었던 도키치는 다시 국적을 세르비아로 바꿨는데 그녀 가족을 난민으로 받아준 호주 언론은 온갖 비판을 쏟아냈다. 그녀는 “내 결정이 아니었다. 난 열한 살의 날 난민으로 받아준 호주를 사랑했다. 난 완벽한 호주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게서 조국을 앗아갔다.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내가 아닌 날 보여주도록 강요받았다”고 하소연했다.

책에는 도키치가 아버지에게 모든 수입을 넘겨주고 한밤 중 가방에 라켓만 넣은 채로 집을 나와 몇달 동안 지낸 적이 있다는 얘기도 담겨 있다. 오륙년이나 여덟 살 아래 남동생과 말도 섞지 못하도록 해 2008년에야 남동생과 화해할 정도였다.

평범한 삶과 평온하게 테니스를 즐기고 싶다는 도키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 다미르는 세르비아 주재 호주 대사에게 주먹질 위협을 가한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그녀의 랭킹은 621위까지 떨어졌고 2009년에야 코트로 돌아왔지만 딱 한 차례 그랜드슬램 대회에 나섰을 뿐이다. 결국 2014년 은퇴한 뒤 아버지와 연락을 취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30년 가까이 고통스러운 삶을 겪었다”고 털어놓은 도키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날 진정으로 아끼지 않는 이들과 결별해야 한다. 때때로 평범한 아버지와 평범한 가족들의 응원을 받았더라면 하고 바라지만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느낀다. 스스로 생각하는 최대치보다 조금 더 운이 따랐던 것”이라고 담담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다미르 도키치가 2000년 윔블던 대회 때 세인트조지 깃발을 든 채 응원하다 경호요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세인트조지 깃발은 영국연방 가운데 잉글랜드인들이 국기로 여기고 있어 윔블던 대회에서는 펼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렉스 피처스 자료사진


다미르 도키치가 2000년 윔블던 대회 때 세인트조지 깃발을 든 채 응원하다 경호요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세인트조지 깃발은 영국연방 가운데 잉글랜드인들이 국기로 여기고 있어 윔블던 대회에서는 펼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렉스 피처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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