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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누가 언론을 4부라 했나/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누가 언론을 4부라 했나/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17-11-14 22:38
업데이트 2017-11-1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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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논설위원
난감한 세상이다. 먼저 서해순씨 앞에서 난감하다. 가수 김광석과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드라마틱한 의혹 앞에서 맨몸으로 뜯어먹혔다. 경찰의 재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서씨는 남편과 딸을 죽인 악마였고, 연쇄 살인마였다. 진실을 모른다면 사실이라도 붙들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만으로 판단하고 재단해야 한다. 그게 야만을 깨우친 인간의 약속이다. 지난 몇 달 이 약속은 파기됐고, 서씨는 유린됐다.

표적을 잃은 화살이 고발뉴스 기자 이상호에게로 쏠린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으로 서해순을 소환한 그가 관객 9만 8200명을 끌어모아 7억 7241만원의 매출을 올렸다는 기사가 따라붙는다. 앞서 세월호의 참극 앞에서 영화 ‘다이빙벨’로 의혹을 팔아 매출 3억 4859만원을 거둔 ‘전과’도 붙어 있다.

이상호를 두둔할 생각, 추호도 없다. 한데 정말 서씨를 팔아 돈을 번 게 이상호뿐일까. 언론은? 온종일 서씨 얼굴을 내보내며 장안의 ‘평론가’들을 죄다 불러모아 갖가지 상상을 부추긴 종합편성채널들과 수천 인터넷 매체들은? 누구도 집계한 바 없으니 알 길 없으나 영화 ‘김광석’ 매출의 수십, 수백 배는 챙겼을 것이다. 이상호의 주장, 서해순의 반격, 평론가들의 관전평…. 다 돈이 됐다. 사실 확인은 경찰에 맡기고, 그저 양측 공방을 중계하는 것으로 마녀사냥의 앞줄에 서서 시청률 높이고, 클릭 수 늘리고, 돈을 챙겼다. 이 공방도 다 사실이니 보도하는 데 주저할 것 없다는 자기 합리화로 무장한 채 거침없는 굿판을 벌였다.

반성이 타성처럼 뒤따른다. 딸아이를 놓친 엄마의 울부짖음을 외면했다는 ‘240번 버스 기사’ 오보 소동 등을 들먹이며 무분별한 여론몰이를 질타한다. 그러나 달라질 게 없음을 우린 안다. 며칠 지나면 또 잊힐 이런 법석조차 진부하다.

서해순 너머로 더 난감한 건 KBS·MBC 경영권을 둘러싼 정치권 싸움이다. 박근혜 정부 때 자리에 앉은 두 방송 경영진의 퇴진을 ‘공영방송 정상화’의 첫발로 꼽은 집권세력과 이를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로 꼽는 야당의 공방이 날 새는 줄 모른다. 1998년 첫 정권 교체 이후 정연주 KBS 사장 임명을 둘러싼 공방 이래 정권 교체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공영방송 쟁탈전의 본질은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운동장 기울이기’다. 두 방송 종사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들이 이들의 파업과 방송 파행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두 방송의 영향력은 보잘것없어졌다. 그런데도 언론을 제 발밑에 두려는 여야의 탐욕은 끝을 모른다. 3년마다 정부로부터 방송사업 승인을 받아야 하는 종합편성채널의 처지도 공영방송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 정권과 가깝다는 민영방송 회장이 알아서 물러나는 판에 현 정권에 밉보인 붙박이 평론가를 단칼에 잘라 ‘화근’을 없애는 건 일도 아니다.

권력에 눌리고 자본에 묶인 게 이 나라 언론의 초상이다. 언론은 4부(府)가 아니며 5부, 6부도 못 된다. 선정보도와 편향보도를 비난하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하지만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뉴스를 만들어도 돈은 네이버 같은 ‘뉴스 소매상’이 버는 왜곡된 시장 구조에서 클릭 수를 하나라도 늘리려 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기사를 갈아 끼우는 처절한 선정 경쟁은 옳고 그름의 차원을 벗어나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경영권과 논조, 보도 방향을 놓고 홍역을 치르는 언론의 정치 예속 구조에서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것도 번지수 잘못 찾은 얘기다.

바른 언론, 공정 보도를 바란다면 이제라도 척박한 언론 환경, 언론을 짓누르고 있는 정치와 자본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작업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한다. 뉴스가 제값 받는 구조를 만들어 활자 매체의 숨통을 터 줘야 하고, 정부가 틀어쥔 방송 사업권을 시민사회 진영의 독립기구로 넘겨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KBS·MBC 경영진 교체가 목전에 다다랐다. 문재인 정부가 정녕 정상을 염원한다면 이제라도 방송법을 바꾸고 언론 환경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5년 뒤에 보잔 말, 이제 그만들 하자.

jade@seoul.co.kr
2017-11-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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