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속박된 인간 ‘따끔한 경고’

입력 : 2017-11-14 17:34 ㅣ 수정 : 2017-11-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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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극단 1927 ‘골렘’ 내한공연
주요 등장인물은 짙은 빨강 머리의 한 남자 배우와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진흙 인형이다. 무대엔 특별한 세트나 소품도 없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총천연색의 애니메이션이 장면에 따라 빠르게 변할 뿐이다. 그 덕분에 별도의 무대 전환이 없이도 세트가 절로 움직이는 듯하다. 실제 배우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함께 어우러진 연기를 보노라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듯한 오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영국 극단 1927이 선보이는 연극 ‘골렘’의 배우들은 무대 장치와 소품을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화면에 맞춰 연기한다. LG아트센터 제공

▲ 영국 극단 1927이 선보이는 연극 ‘골렘’의 배우들은 무대 장치와 소품을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화면에 맞춰 연기한다.
LG아트센터 제공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극단 1927이 새로운 공연에 목말라 있는 관객들을 위해 신선한 자극이 될 만한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애니메이션과 연극, 퍼포먼스, 라이브 음악을 결합한 공연 ‘골렘’(16~19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이다. 2014년 런던 영 빅에서 8주간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연극의 미래”(이브닝 스탠더드), “21세기의 프랑켄슈타인”(더 타임스) 등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은 후 뉴욕 링컨센터 페스티벌,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모스크바 체호프 페스티벌 등 세계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을 투어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공연이다. 극단 1927의 한국 공연은 2008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데뷔작 ‘비트윈’을 선보인 뒤 9년 만이다.


2005년 애니메이터 폴 배릿과 작가 수잔 안드레이드가 창단한 1927은 배우 애즈머 애플턴,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릴리란 헨리 등 독특한 조합으로 구성된 극단이다. 화려한 색감의 애니메이션과 배우들의 퍼포먼스, 라이브 음악을 조합한 형식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불공평함과 권력과 조종 등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독보적인 작업 방식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다.

‘골렘’은 회사에서 온종일 백업만 하는 소심한 남자 로버트가 어느 날 우연히 말하는 점토 인형 ‘골렘’을 갖게 되면서 송두리째 바뀐 일상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랍비가 만든 점토 인형인 골렘이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유대인들의 전설을 바탕으로 삼았다. 골렘은 로버트의 일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그가 입을 것과 먹어야 할 것까지 알려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진화한 골렘은 귀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모양으로 변해 급기야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골렘의 지배를 받게 되는 로버트를 통해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에 속박되어 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공연을 이틀 앞둔 14일 LG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배릿 예술감독 및 애니메이터는 “골렘은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현대 기술의 메타포”라면서 “기술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게 어떻게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기술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고 통제하는지 그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제시하고 이런 사회적 현상이 자본주의의 병폐와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배릿 예술감독

▲ 배릿 예술감독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풍성한 색감의 애니메이션과 마치 애니메이션 영상 속으로 직접 들어간 듯한 배우들의 정교한 연기다. 배릿 예술감독은 “이 작품은 정해진 틀에 맞춘 연기를 하지 않으면 극적 효과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마치 짜 놓은 안무를 따라 하듯 연기를 펼친다”면서 “관객들이 보기에는 전반적으로 손쉽고 수월해 보이는 연기지만 사실은 굉장히 긴 리허설을 거쳐 섬세한 연기의 층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골렘의 움직임은 점토로 실제 인형을 만든 뒤 걷고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구현해 냈다. 배릿 감독은 “영화와 연극을 함께 보는 듯한 작품을 본 관객들이 ‘꿈결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환상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작업 방식이 진중한 사회 이슈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람료는 4만~8만원. (02)2005-0114.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11-1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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