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시간여행] 장독대가 있던 자리

입력 : ㅣ 수정 : 2017-10-24 18:04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절이나 오래된 한옥을 찾아가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뒤뜰로 향한다. 대개 그곳에 장독대가 있기 때문이다. 걸음 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독이나 항아리들을 발견하면 오래전에 헤어진 육친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독들을 하나씩 헤아리며 혼자 짐작을 해 보기도 한다. 저건 된장독, 저건 간장독, 저기엔 고추장이 들어 있을 거야. 된장독에는 장아찌들이 익어 가겠구나…. 그러다 보면 기억은 뒷걸음질을 거듭해서 자연스럽게 어릴 적 한순간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우겠다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객지로 떠난 뒤, 뒤란 장독대의 독들은 더욱 빛이 났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장독대에 가서 살았다. 아침에 밭으로 나가기 전에도, 해거름에 집에 돌아와서도 장독대부터 찾았다. 그러고는 티베트인들이 마니차를 돌리듯 독들을 정성스레 닦았다. 독들은 날이 갈수록 반짝거렸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가 멀리 있는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장독대에 풀어놓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장독대를 보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거기 서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비비고는 한다.

우리 일가족이 고향을 떠날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자질구레한 세간을 실은 작은 트럭을 타고 어머니가 먼저 떠난 뒤 할머니와 나, 동생은 새로운 삶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오십 리는 너끈히 되는 길이었다. 하지만 나도 어린 동생도 그날은 아무 말 없이 먼지가 풀풀 나는 신작로를 따라 걷기만 했다.

우리 가족을 보내기 아쉬웠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빈 항아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따라왔다. 트럭에도 아주머니의 머리에도 오르지 못한 독과 항아리들은 버림을 받았다.

돌아보면 비쌀 것도 없는 항아리를 머리에 인 이사 행렬이 희극의 한 장면 같지만, 그때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머리에 인 항아리는 할머니, 어머니가 아끼던 것 중 하나였다. 할머니 역시 당신의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항아리였을 것이다. 그날 신작로에는 햇살이 작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항아리 위로 떨어진 햇살 몇 가닥이 통통통 튀어 오르는 것을 나는 한참씩 바라보았다. 조금은 비현실적인 그 풍경이 눈부셔서 자꾸만 눈을 깜박거렸다.

항아리가 닳도록 닦던 할머니나, 항아리를 이고 먼 길을 걸어가던 어른들 마음의 한쪽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내가 깨달은 장독의 의미는, 한 집안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증표였다. 누대를 이어 온 핏줄의 상징이었다. 구성원들이 세워 놓은 깃발이었다. 비록 삭풍 속으로 뿔뿔이 흩어질지라도, 언젠가 다시 모여 살기 위해 함께 가야 하는 존재였다.

장독대는 언제부턴가 과거 속의 그림이 되었다. 도시에는 장독대를 둔 집이 거의 없거니와 그럴 환경도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며 독을 닦는 사람도 없다. 주부들에게 장독대는 오래전에 사라진 공간일 뿐이다. 김치는 김치냉장고 속에서 안온하게 익어 가고 대량 생산된 된장과 고추장, 간장은 시간이 가도 환한 빛을 잃지 않는다.

모든 게 수십 년 사이에 이뤄진 변화다. 그저 그럴 뿐 크게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세월에 쫓기어 뒤안길로 황급히 사라진 게 어디 장독대뿐일까. 하지만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계절마다 빈 가슴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2017-10-25 30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

서울Eye - 포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