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5년 만에 재등장한 ‘북한 악마화’의 위험성/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입력 : 2017-09-25 22:26 ㅣ 수정 : 2017-09-2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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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북한 완전파괴’, ‘자살 임무 로켓맨’ 등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에 대한 우려 속에서 눈길을 끈 발언은 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로운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맞서지 않는다면 악마가 승리할 것이다”라며 북한을 악마로 지목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후 15년 만이다.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마음의 틀’이 ‘북한 악마화’ 발언에 반영된 것은 아닌지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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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마음의 틀은 정보를 선택·분석·조합하고 대안을 생성하는 정보 처리 과정을 지배한다. 북한이 악마라는 틀은 북한이 악마임을 보여 주는 정보만을 선택하고 북한이 악마가 아니라는 증거는 외면하게 만든다. 김정은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김정일을 뛰어난 지도자로 언급하는 전문가들까지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의 틀은 증거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왜곡하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을 악마의 테두리에 넣은 뒤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가 이라크 전쟁 결심의 주요 원인이었다. 악마화는 오판의 가능성을 높인다. 트럼트의 북한 악마화가 위험한 첫 번째 이유다.

북한을 악마로 바라보는 심리적 틀은 문제를 선과 악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선악의 관점에서 보면 악마는 정복과 전쟁의 대상이며 악마를 제거하는 것이 도덕적 책무다. 악마와 공존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명예롭다는 인식이 우리의 사고 과정을 지배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도덕적 의무감은 악마를 제거하기 위한 비도덕적 행위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초가삼간을 불태워서라도 빈대를 잡겠다는 자기 파괴적 행위도 정당한 희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오판에 따른 피해를 정당화하는 마음 갖춤새, 트럼프의 북한 악마화가 위험한 두 번째 이유다.

악마와 대화나 협상은 없다. 악마와의 대화 자체가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악마화의 심리적 틀은 상대와 마주 앉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높인다. 설사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신뢰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악마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을 수 있는지, 시간 벌기가 목적이 아닌지 등 악마의 진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유발한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항상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악마화는 상대의 이익은 곧 나의 손실이라는 제로섬 편향을 극대화한다. 협상은 상대 이익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악마화는 윈윈의 협상안을 악마의 승리로 만들어 버린다. 북한의 이익이 한국의 손실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북한 악마화가 위험한 세 번째 이유다. 악마를 악마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은 북한 악마화가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서글프다.

북한 사람 머리에 뿔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는 탈북자에 대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의 기사는 북한에 대한 악마화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왜곡하고, 북한이라는 악마를 정복하기 위해 자기 파괴적인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북한과 북한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모습들은 한국 사회의 과거이자 현재인 것이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악마 북한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가 아니라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여야 한다. 손자가 말한 백전불태(百戰不殆)의 첫걸음은 지피(知彼)다.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을 경험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전쟁의 안개’에서 밝힌 승리의 첫 번째 원칙은 ‘적과의 공감’이다. 현재 한반도 위기에 대한 맥나마라와 손자의 조언은 같다. 북한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나의 기대, 그것이 악마이건 단일민족이건 그 기대를 내려놓고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만 실효성 있는 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
2017-09-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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