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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재배 청년 농부 ‘손익 0원’… 영농정착금 ‘거름’ 될까

고구마 재배 청년 농부 ‘손익 0원’… 영농정착금 ‘거름’ 될까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7-09-24 23:14
업데이트 2017-09-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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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인 김모(22)씨는 지난해 10월 고구마를 내다 판 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500만원이 찍혀 있었지만 이미 5개월 전부터 영농 자금으로 500만원을 썼기 때문이다. 손익 ‘제로’(0). 김씨는 ‘창농’(창업 농사)을 선언한 첫해에 손해를 보지 않아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았지만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영농정착지원제’가 김씨와 같은 청년 농업인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씨는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농사 현장에 뛰어들었다. 선배들의 실패를 익히 봐 왔던 터라 ‘손해 보지 말자’를 목표로 세웠다. 무턱대고 빚부터 낼 순 없었다.

학교 다니며 틈틈이 모아둔 돈으로 경기 김포에 농지 4300㎡를 빌렸다. 2년간 임대료는 170만원. 고민 끝에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 농사로 돈을 벌려면 최소 재배 면적이 10만㎡(10㏊)는 돼야 하지만 키우기 까다롭지 않고 대중적이어서 실패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 선택했다.

고구마순을 사고 트랙터를 불러 땅을 두 번 갈았다. 포장 박스에 택배비 등 자재값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이런저런 투자 비용으로 500만원이 나갔지만 자신이 챙길 월급은 없었다. 고구마를 캔 가을 한철에만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김씨처럼 창농을 한 청년 농부는 첫 수확 때까지 배를 곯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영농 초기 대리운전, 막노동, 품팔이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청년 농부도 적지 않다. 김씨도 지난 4~5월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국제 꽃박람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씨는 수확기에 수입·지출을 정산하고 난 뒤에도 돈이 부족해 통장에 모아 둔 돈에서 추가로 헐어 썼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기도 했다. 밭 근처 김포에 얻은 원룸 월세와 관리비, 식비, 교통비 등으로 월평균 70만~85만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음 같아서는 비닐하우스를 지어 시험 작물도 재배하고 고구마 재배 면적도 늘리고 싶었지만 솔직히 하루하루 먹고살 궁리만으로도 벅찼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하는 ‘청년 농업인 영농정착지원제’는 김씨처럼 농사를 시작했지만 생계 걱정 때문에 농업에 주력할 수 없는 청년을 위한 제도다. 영농 초기에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위해 내년 예산으로 91억원을 편성했다. 만 40세 미만이면서 영농 경력 3년 이하인 청년 농업인 중 1500명을 선발한다. 농사 1년 차에는 월 100만원을 지급하고 2~3년차부터 전년 소득을 고려해 차감 지급한다.

지원금의 사용 용도를 제한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강동윤 농식품부 경영인력과장은 “기존의 창업지원사업은 농자재 구입 등 영농 창업 관련 비용에만 지원했지만 내년부터 도입되는 영농정착지원금은 생활자금 등으로도 쓸 수 있어 청년 농업인의 부담을 한층 덜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 창농지원제는 영수증을 제출하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었지만 내년부터는 정착지원금 전용 카드를 별도 정산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농식품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청년 농업인 직불금 도입’ 공약을 검토해 이번 제도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청년취농급부금제도를 도입해 45세 미만 청년 농업인에게 연 최대 150만엔(약 1500만원)을 최대 5년 동안 지급하고 있다. 프랑스도 1973년부터 40세 미만 청년 농부에게 정착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2015년 기준 1만여명이 평균 2만 유로(약 2700만원)를 받았다.

김씨는 영농정착지원제 도입에 대해 “월 100만원이 생긴다면 월세나 식비 등 고정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돈을 아껴 작은 온실하우스를 지은 뒤 한라봉처럼 내륙 재배가 가능한 열대작물이나 삼채, 비타민 나무 등을 시험 재배해 보고 싶다”면서 “고구마 재배 면적을 지금보다 2~3배 늘리고 돈이 많이 드는 농기계도 자주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반색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2017-09-2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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