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유레카] 논문 공저자의 책임

입력 : ㅣ 수정 : 2017-09-0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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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가 거대과학이다. 연구주제, 연구비, 참여 인원수, 실험장비, 연구 결과의 파급력 같은 요소들이 이전에 비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에는 가장 많았을 때는 연인원 13만명이나 참여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과학자와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폭탄 물질 생산 공장의 건설 노동자까지 포함된 수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원자폭탄 개발과 생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과제를 위해 일한 점은 분명하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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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20세기 후반에는 민간의 과학연구 규모도 커졌다. 그에 따라 연구 활동에서 조직 관리와 역할 분담은 당연한 일이 됐다. 공동연구자들은 연구 기획, 실험 수행, 데이터 분석, 논문 작성과 수정 등 여러 방식으로 연구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한 편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공저자가 서너 명인 경우는 흔하고 연구 특성에 따라 많게는 수십 명인 경우도 있다. 기여한 정도에 따라 공저자 목록에서 연구자 이름의 위치가 정해진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연구자들의 기여도를 평가하고 공저자 포함 여부를 결정할까. 연구에 얼마나 기여하면 공저자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공저자들이 연구 결과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저자들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40년도 더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이 문제가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74년 미네소타대학의 윌리엄 서머린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피부이식 실험 결과를 조작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서머린도 인정했으므로 조작 사실 자체는 분명했다. 그런데 서머린은 슬론 케터링 암 연구소의 유력 과학자 로버트 굿이 성과를 내라고 압박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굿은 이전에 미네소타대학 교수로 있을 때부터 수년간 서머린의 연구비를 대고 서머린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공동연구자이자 ‘보스’였다. 연구소의 조사위원회는 조작 사실을 몰랐고 압력을 준 적이 없다는 굿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통상적으로 공동연구자들은 상대에게 진실성과 신뢰성을 기대한다는 점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서머린이 조작된 연구 결과를 학술대회에서 발표했을 뿐 논문으로 출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굿은 데이터 조작에 대한 비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굿이 이전 서머린의 논문에 공저자로 올라가고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서머린이 굿의 지원 덕분에 연구가 가능했지만 실제 굿과 함께 연구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서머린의 말만 들으면 공저자로서 굿이 한 일은 서머린의 연구 기획의 가치를 판단하고 연구비를 구해 준 것뿐이다.

굿의 역할을 현대 과학 연구에서 분업 체제의 한 부분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연구비만 대주고 연구 결과에 무임승차한 것으로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미묘한 문제다. 연구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되면서 연구를 데이터 생산과 분석이라는 좁은 영역에 국한할 수 없게 됐다. 적절한 연구 기획, 이를 위한 연구 자원 확보, 연구 자원의 적절한 배분과 연구 과정 관리까지 모두 좋은 연구 결과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굿은 그런 능력을 갖추었다. 그 결과 서머린 조작 사건이 있기 전 5년간 굿은 700여편의 좋은 평가를 받은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굿은 가장 많이 인용된 연구자 중 한 명이 됐다. 현대 과학 연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 연구에 기여한 사람이 공저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 결과와 관련해 공저자로서 기여한 만큼 보상받거나 책임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이어 나가려면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이 논문에 무임승차하거나 기여한 바가 있는 사람이 공저자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2017-09-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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