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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입력 2017-08-24 22:32
업데이트 2017-08-2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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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짙푸른 계절이었다. 광주 금남로 인근 도서관 창문 틈으로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퍼졌다. 눈물을 흘리며 책가방을 싸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며칠 전으로 기억된다. 고교 2년 때 중간고사를 대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주한 5·18이었다. 이후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거리의 대학생 형들을 따라 자연스레 시위대에 섞였다. 20일 저녁 불타는 방송사 앞길에서 온몸이 피로 물든 청년이 업혀가는 것을 봤다. 계엄군의 장갑차에 깔렸다고 했다.
최치봉 사회2부 기자
최치봉 사회2부 기자
다음날인 21일 점심 무렵 내가 탄 트럭이 동구 지산동 법원 앞 사거리를 지날 때 몇몇 노인들이 길을 막아섰다. 당시 전남도청과 불과 1㎞쯤 떨어진 곳이었다. 돌이켜보니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시각이었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 아우성, 울부짖음이 시내를 물들였다.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때 입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때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냈다. 기자가 된 이후 5·18 관련 취재를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사안은 여전히 미궁이다. 당시 실권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와는 무관하다”며 발뺌이고, 헬기 기총소사, 공군 전투기 출동 대기명령 등에 관한 증언과 반박이 난무하고 있다. 극우 보수단체의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도를 넘어섰다. 이들은 지금도 5·18에 빨갱이와 폭도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광주 시민을 모독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방부에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시민들도 “이번만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진상규명 활동 가운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가 그나마 5·18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문건으로 꼽힌다.

이 보고서는 전군지휘관 회의와 5·17조치,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모습, 계엄군의 작전·상황일지 등 당시 광주의 속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자위권 발동과 관련한 주요 지휘관 회의 내용 등도 들어 있다. 군이 작성한 ‘전투상보’ 등에서는 당시 상황을 왜곡하거나 축소·조작한 흔적도 일부 밝혀졌다. 그럼에도 발포 명령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이번에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기밀로 분류한 존안자료 등을 정밀검토할 경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공산은 크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고백·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는 모습이 역사에 기록되는 날을 바랄 뿐이다.

cbchoi@seoul.co.kr
2017-08-2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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