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해방촌에서] 구질구질 사랑해

입력 : ㅣ 수정 : 2017-08-0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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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를 드디어 다 읽었다. ‘드디어’라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7월 17일에 출간된 이 책을 2년이 지나서야 우연히 손에 넣고 홀딱 반해 읽다가 마침 만난 친구에게 넘기고, 다시 사서 이어 읽다가 또 다른 친구에게 넘기고, 네 번째에야 끝을 봤기에 하는 말이다. 선물용으로 각별히 구매한 것까지 총 일곱 권을 샀다. 내 시집도 누가 그렇게 사면 좋으련만…. 화자가 12세 11개월 18일 되던 1936년 9월 28일 월요일에서부터 87세 19일인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까지의 ‘몸의 일기’는 책 띠지에 적힌 대로 ‘배설, 성장통, 성(性), 질병, 노화 죽음, 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내밀한 기록’이다. 책을 얇은 비닐로 밀봉해서 판매하는데, ‘19금’이어서가 아니라 하얀 표지가 더럽혀질까 봐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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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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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숙 시인

숨을 받는 순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한 생이 맡겨진 몸. 하나의 생에는 오직 하나의 몸이 주어진다. 세상에서 자기 것이라고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확실한 건 자기의 몸이리라. “무지는 무관심과 동의어”라며 제 몸을, 그리고 제 몸이 감지하는 세계(타자들의 몸)를 지대한 관심으로 대하는 화자이니만큼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늙었을 때나 자기의 몸, 자기의 생을 공평한 호기심으로 사랑하며 유유히 받아들인다. 어릴 때는 병약했던 그가 비교적 장수할 수 있었던 건 신체시계를 잘 타고나서이겠지만, 천수를 누릴 만하게 몸을 잘 관리한 덕도 클 테다. 가령 그 긴 세월의 몸 일기에 치통이나 틀니 등 치과 계통 언급이 일절 없는 것으로 미루어 양치질도 잘하고 제때 처치를 잘 받은 모양이다. 여기 생각이 미친 건 내가 이 염천에 2주간이나 치과를 다녀서이겠지.

꽤 오랫동안 치과를 가지 않았다. 오른쪽 어금니 하나에 덮어씌운 금니가 빠져 버려 심란했던 게 2년 전인데 어쩌다 보니 방치했다. 그 뒤 이런 이 저런 이에 치통이 올 때면 치과에 달려가려다가도 의사 선생님한테 험악한 입속을 보이기 창피해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다. 그런데 봄부터 왼쪽 어금니가 특히 밤이면 극렬하게 아팠다. 독주를 머금는다, 프로폴리스를 뿌려댄다, 대증요법으로 고비를 넘길 때도 있었지만 차차 진통제를 삼키고도 심장이 죄는 고통을 한참 겪고서야 통증이 가라앉았다. 참, 치통이 심할 때 과자를 먹는 것도 한 방편이더라. 완연 통증이 멎는데, 치아를 갉아먹던 충치균이 과자를 먹으려고 옮겨 가서가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원래 다니던 치과에 가기 전에 애벌 치료를 받고자 동네 치과를 찾았는데 거기서 나는 내 인생의 치과의사를 만났다. 무려 3년 만에 스케일링을 하고 사랑니를 뽑고 아픈 이 치료를 시작한 첫날, “이렇게 야만스러운 입안은 처음 보시지요?” 기죽은 내게 50대 여성인 그이는 온화한 목소리로 참으로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차차 관리하면 되지요.” 아, 얼마나 환자의 수치심을 눅여 주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의사인지. 게다가 그 손길은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구나, 사랑니는 언제 빼려나, 얼마나 아플까. 두려워하며 진료대에 누워 있는 와중에 잠이 솔솔 왔는데, 어느새인가 사랑니도 뽑고 그날의 치료를 마쳤다. 먼저 다니던 치과의 선생님도 미더운 분이지만, 배반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나는 치과를 옮기기로 했다. 신경 치료를 마치고 금니를 덧씌우기까지 하루 건너 치과를 다녔는데, 의사 선생님은 왜 이렇게 염증이 쉬 가라앉지 않나 의아했을 것이다. 실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야식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군것질을 하다 잠이 들곤 했던 것. 그이가 알았으면 “나랑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거예요?” 하셨을지도 모른다. 날이 서늘해지면 오른쪽 치아 치료를 받기로 했는데, 또 죽을 듯 아파서야 갈 것인가.

치통을 해결하니 안질이 왔다. 작년부터 여름이면 계절병처럼 눈병에 걸린다. 닷새쯤 미루다 안과에 갔는데 환자가 스무 명 가까이 대기하고 있어 그냥 나왔다. 그게 일주일 전인데, 꾸덕꾸덕 낫는가 싶더니 그제부터 다시 심해졌다. 오늘은 마흔 명이 대기하고 있더라도 기다리리라. 내 ‘몸의 일기’는 구질구질하구나. 구질구질 내 인생?
2017-0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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