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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풀꽃 편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태주의 풀꽃 편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입력 2017-08-06 22:34
업데이트 2017-08-0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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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
며칠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문학 강연 여행을 다녀왔다. 7박 9일. 주로 문인들을 만났다. 덩치 큰 나라, 힘센 나라로 이민 가서 떠나온 나라, 어머니 나라의 말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고 그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번번이 애절한 마음이다.

그들의 모국어 실력은 떠날 때 수준 그대로 멈춰져 있고 문학단체 운영은 부침이 심해 불안했다. 그러자고 모국어로 글을 쓰고 문학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서로 바라만 보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한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주로 한국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왜 오늘날 우리들이 불행하며 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시와 시인이 맡아야 할 몫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시와 문단은 깨어진 거울과 같다. 하지만 깨어졌으므로 옥석이 가려졌고 그러므로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나름 논지였다.

머무는 동안 두고 온 풀꽃문학관이 궁금했고 내 손으로 가꾸던 식물들이 궁금했다. 비가 많이 내렸고 비가 그친 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뉴스였다. 꽃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그것은 노심초사. 사람이 이렇다. 이곳에 있으면 저쪽이 걱정스럽고 그쪽에 있으면 또 이쪽이 걱정이 된다.

하지만 혼자서 궁금해하고 걱정을 했을 뿐 돌아온 자리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 또한 여전하기만 했다. 돌아온 날이 토요일 저녁이라서 집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고 곧장 대천에서 열린 문학 모임에 참여한 뒤 오후 시간에야 겨우 풀꽃문학관을 찾았다.

휴일이면 문학관에는 나를 보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피곤하지만 그들을 맞아 이야기도 나누고 책에 사인도 해주어야 한다. 방문객 가운데 동화를 쓰는 젊은이 다섯 명이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언제든 좋은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감정을 갖는다.

왜 우리는 글을 쓰는가. 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 젊은 방문객들은 답을 바로 대지 못했다. 풍금이 있는 방으로 가 풍금 반주에 맞추어 동요 몇 곡을 들려주었다. 왜 내가 피곤하다면서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을까요. 이번에도 쉽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몇 차례 말이 오간 끝에 대답이 나왔다. 네, 선생님 자신을 위해서 오르간 연주를 한 것입니다. 그러하다. 나는 가끔 나를 위해 오르간 연주를 한다. 몸은 비록 피곤하지만 오르간 연주를 하다 보면 육신의 피로감이 풀리고 마음까지 평온해짐을 번번이 느끼곤 한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위안이고 감동이며 그 자체 치유이고 마음의 희열이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산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 뿐이고 애쓸 따름이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을 위해 한다고 그러면 피곤한 느낌이 들고 짜증이 나고 불행감마저 들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인생을 산다 그럴 때 책임감도 생길 것이고 새로운 소망도 싹틀 것이다.

젊은 방문자들이 떠난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꽃들을 만나러 나갔다. 열흘 만에 만나는 꽃들이다. 허지만 꽃들의 세상도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이파리가 조금 시든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많이는 키가 자라 있었다. 의젓한 모습. 나만 혼자 괜한 걱정을 한 것이다. 오히려 한여름날의 진객 벌개미취들이 연보랏빛 꽃송이들을 가득 피워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내가 걱정해서 일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걱정을 해도 좋겠지. 하지만 세상에 걱정으로 해결된 문제는 없다. 미국에서 잠시 만나고 온 문인들의 일도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들의 문제는 오로지 그들의 문제일 뿐. 그들도 그들의 인생을 살며 그들 자신을 위해 글을 쓰다 보면 점점 좋아지고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달라지는 모습, 흐르는 강물 위에 우리들 유한한 인생이 있다.

2017-08-0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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