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정의 컬처 살롱] 더위 단상

입력 : ㅣ 수정 : 2017-07-1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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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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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

경주가 낮 기온 39.7도를 기록하던 날 대구에 사는 한 지인은 ‘이렇게 더운데도 경주에게 1등을 뺏기다니’라며 귀여운 폭염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대구는 분지라 항상 가장 덥다 했는데 이젠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며 애교 섞인 푸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낮 기온 30도를 넘나드는 요즘 선풍기는 이미 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하고, 에어컨은 전기세 걱정에 켰다 껐다를 반복하게 된다. 바야흐로 폭염의 계절. 국민안전처에서는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낮 동안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더위가 가실 때까지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발바닥에서 불이 날 것같이 더웠던 그날 시내에 일이 있어 폭염을 뚫고 집을 나섰다. 하도 더워 혼미한 정신에 어찌어찌 볼일을 마치고 신촌으로 가던 길이었다. 시간은 오후 4시쯤 독립문 근처 횡단보도 앞에 그늘막이 보였다. 보통은 아파트 분양이나 각종 판촉 행사가 있을 때 볼 수 있는 것이라 이 더운 날 길에서 영업하는 것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가가 보니 그늘막 안에는 햇볕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 몇이 서 있었다. 영업이 종료된 그늘막을 치우지 않았나 보다 생각하며 나도 그 그늘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길을 건넜다. 건너와 돌아보니 그늘막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뜨거운 햇볕, 잠시 피했다 가세요. ○○동 주민센터.’ 소박하지만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필요한 조치였기에 소중한 존재로 보호받는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 대접받는 것 같기도 했다. 일순간 더위가 가시는 듯 온몸이 시원해지는 듯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뜨거웠다.

기다리는 버스는 쉬이 오지 않았고, 바람은 빠져나갈 통로를 찾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며 홧병 난 사람처럼 열을 올렸다. 과도한 냉기로 반소매 여름 옷을 무색하게 했던 실내와 검은색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은 실외를 오가며 온도 적응에 평균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낸 내 몸은 장맛날 입은 모시 적삼같이 끈끈하고 후들거렸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물로 씻고, 차가운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 기사님이었다. 8시가 좀 넘은 시간 한낮의 더위보다야 낫겠지만 교대 근무도 아닐 터인데 아직까지 배달 업무가 끝나지 않았나 생각하니 편히 앉아 물건 받는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주문한 물건을 받으러 나가며 얼른 찬물 한 잔을 따랐다. “더우신데 시원한 물 드세요”라며 기사님께 잔을 드렸더니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많이 말랐었어요”라고 답하시며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무거운 짐을 집집마다 배달해 주는 일이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한국통합물류협회 집계에 따르면 2016년 20억 상자 이상의 택배가 오갔고, 택배 기사 1인당 일평균 150~300개의 상자를 배달했다고 한다.

어떤 집엔 사람들이 있어 물건을 직접 배달할 수 있었겠지만 어떤 집은 경비실에 맡겨 달라, 어떤 집은 집 앞에 놓고 가 달라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집은 깃털처럼 가벼운 물건이라 힘이 덜 들었겠지만, 어떤 집은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무거워 진땀도 뺐을 것이다.

“더운데 마셔서 그런지 물이 아주 맛있습니다”라는 택배 기사님의 인사말에 나는 괜히 쑥스러워 빈 컵만 만지작거렸다. 그늘막 한 자락, 시원한 물 한 잔은 더위를 이기는 장사의 무기였다.
2017-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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