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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 성평등 정책,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In&Out] 성평등 정책,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입력 2017-07-18 23:34
업데이트 2017-07-19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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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우리는 지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을 역사상 처음으로 약속한 대통령을 맞이했다. 주요 공약에 성평등 정책을 포함시켰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청와대 인사수석, 보훈처장, 외교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에 여성을 임명했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독점해 왔던 영역이다. 대통령이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 실현이라는 여성 대표성 공약을 단순히 숫자 채우기로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신뢰를 줄 만하다. 다만 현재까지 임명된 17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은 4명으로, 초기 내각에 여성을 30% 기용하겠다는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최근 활동을 마무리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대통령 공약인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성평등위원회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해당 분과 위원장은 언론에 공개한 전문가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우리나라 성평등 지수가 경제와 사회 발전 수준에 뒤처져 있다”며 “성평등 문제 해결 없이 사회의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기대할 만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간담회에서 실제 추진하겠다고 밝힌 성평등위원회의 윤곽은 대통령 직속이지만, 독자적 사무국은 없는 자문기구다.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정책은 여성가족부 외에도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중앙행정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립,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조정하고 통합하는 역할은 여성가족부가 맡고 있었지만 동등한 부처의 처지에서 다른 부처 관할 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해 부처 간 성평등 정책을 총괄·조정할 수 있도록 위상을 강화하고 이를 실행할 독자적인 사무국을 둬야 한다고 여성계가 요구해 온 것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구체화한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공약은, 실질적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철학과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성평등 정책이 앞으로 맞게 될 난맥상의 가늠자이다.

새 정부의 인선에서 후보자의 왜곡된 여성관, 성차별적 인식과 행동 등으로 사회적 논란도 진행 중이다. 여성계는 공직인사 검증기준에 성평등 관점이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해 인사에 대한 여성들의 비판은 한 개인의 거취 문제를 넘어 국정철학으로서의 성평등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성평등 의식이 공직 인선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그러나 정부는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멸시, 비하가 용인되지 않는 평등한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선을 만들어 가자는 여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정부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기준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성평등 의식에 대한 추가 논의 없이 기존의 ‘5대 불가 원칙’의 개편만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실현해 나갈 새 정부의 비전과 의지를 낙관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관련 정책 행보는 현재까지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다. 새 정부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6년 성격차지수 11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남녀임금격차 1위와 같이 우리 사회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차별을 과감하게 타개해 나갈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 성평등에 기반한 사회구조 개혁, 차별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성평등 정책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2017-07-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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