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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참된 선비의 삶이란?/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수요 에세이] 참된 선비의 삶이란?/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송한수 기자
송한수 기자
입력 2017-07-11 22:42
업데이트 2017-07-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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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둘레길 3코스는 고덕·일자산 코스로 불린다. 광진교에서 출발해 강동구 고덕산과 일자산을 지나 수서역에 이르는 26.1㎞ 길이다. 지난해 겨울, 눈이 분분히 내리는 날 둘레길 3코스를 걸었다.
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시인·전 행정자치부 차관
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시인·전 행정자치부 차관
높이 100m도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 고덕산이라 불리는 유래를 궁금해하던 차였다. 고덕산과 고덕동이 고려 말 충신 석탄(石灘)이양중 선생의 높은 덕을 기려 지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석탄은 태종 이방원, 야은 길재, 상촌 김자수, 운곡 원천석 등과 사귀며 참된 선비의 자질을 길렀다. 문과에 급제해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조선 건국 후 경기도 광주, 지금의 고덕산 자락에 은거했다. 태종이 즉위한 뒤 옛 친구로서 대하며 출사하기를 권해 현재로 치면 서울특별시장인 한성부윤을 제수했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태종이 광주로 석탄을 손수 찾아가니 검소한 복장으로 왕을 배알하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부근에 흐르는 하천을 왕이 묵었다 해서 왕숙천이라고 일컫는다.

조금 더 가니 일자산이 길손을 맞았다. 일자산에는 둔골이 있었다. 강동구 둔촌동 역시 일자산에 은거한 고려 말 충신 둔촌 이집 선생의 호를 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둔촌은 신돈의 전횡을 탄핵하다 생명에 위협을 받자 부친을 업고 경상도 영천까지 피신했다. 신돈이 죽은 후 개경으로 돌아왔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일자산 부근으로 낙향, 은거했다. 일자산에는 둔촌이 자손들에게 내린 훈교비를 세웠다. 후손에서 정승 5명, 판서 6명, 공신 7명이 나왔다.

두 선비의 벼슬이 필자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높은 절의로 땅과 산에 이름을 새겨 후학에게 참된 선비의 길을 알렸다. 일자산 둔골 부근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때마침 내린 눈으로 무덤은 희끗희끗했다. 관을 벗은 노선비의 흰머리처럼 느껴졌다. 문득 선비로 태어나 석탄과 둔촌처럼 땅과 산에 이름을 새기지는 못할지언정 부모의 이름을 더럽히고 자식에게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느니 차라리 저 이름 없는 무덤의 깨끗함과 겸손함을 좇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느낌과 결의를 담아 시 한 수를 지어 유혹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思兩李之節(사양이지절)

둔촌과 석탄의 절개를 기리며

踏一字高德(답일자고덕)

일자산 고덕산을 지나면서

懷遁村石灘(회둔촌석탄)

둔촌과 석탄을 그리워한다

士須臾出世(사수유출세)

선비 한 번 세상에 나와

知自退兼善(지자퇴겸선)

벼슬길 물러날 때 스스로 알고

遺久久節義(유구구절의)

변치 않는 절의 길이 남기어

銘名於地山(명명어지산)

산과 땅에 그 이름 새기었구나

寧使王宿露(영사왕숙로)

왕을 이슬 속에 재울지언정

毋攪後學壇(무교후학단)

후학의 배움터 더럽히지 말고

雖臥無名谷(수와무명곡)

길가에 이름 없이 누울지라도

不賣名爲賤(불매명위천)

명예를 팔아 천하게 되지 말지니

羨墳之廉潔(선분지염결)

아, 그 무덤의 깨끗함 부러워

跪坐斂襟冠(궤좌렴금관)

삼가 무릎 꿇고 옷깃 여민다

丙申 晩冬 謹作(병신 만동 근작)

병신년 겨울에 삼가 지음

2017-07-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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