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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문전박대 日 부산총영사/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전박대 日 부산총영사/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7-07-06 23:42
업데이트 2017-07-0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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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부와 일본 규슈 지방의 왕래는 몇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부산과 일본의 역사는 길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받더니 조선 시대 왜인이 늘어나 재패니즈 타운, 왜관(倭館)을 두고 관리했다. 초량 왜관이다. 1876년 일본이 부산을 개항시킨 뒤 영사관을 세운 곳도 동광동이다. 해방 이후 일본 총영사관이 개설된 것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듬해인 1966년. 이런 지방 총영사관이 한·일의 국제적 관심을 끈 것은 지난달이다.
일본 외무성은 6월 1일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의 퇴임 인사를 발표했다. 후임은 미치가미 히사시(58) 두바이 총영사였다. 6월 16일자 아사히신문 칼럼. 서울지국장을 지낸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은 총영사의 ‘경질’ 경위를 이렇게 썼다. “(부산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로) 일시 귀국했던 모리모토가 기자와 식사를 하며 나눴던 발언이 유출됐다. 자국민 보호를 맡은 총영사라 빨리 돌아가 일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다른 언론사 기자가 ‘정권 비판’이라며 정부 고위직에 흘렸다.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통상적인 인사’(일본 정부), ‘사실상의 경질’(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산케이신문), ‘이례적인 교체’(반아베 성향의 아사히신문). 평가가 제각각인 인사였다.

미치가미 총영사가 6월 30일 부산에 부임했다. 한·일 제2의 도시 부산과 닮았다는 오사카가 고향이다. ‘코리안 스쿨’로 한국 근무가 네 번째다. 정확한 한국말을 구사하고 7년 가까운 한국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올해 출판한 ‘일본 엘리트는 빗나갔다’에서는 여전히 아시아 최고라고 착각하는 일본, 그리고 미치가미 총영사의 근무 경험이 있는 한국, 중국, 중동의 글로벌화를 비교한 날카로운 분석이 재밌다.

미치가미 총영사는 부임하자마자 2001년 도쿄에 유학 중 전철역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씨의 부산 묘지를 참배했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시장을 예방하며 부임 인사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정작 총영사관이 있는 동구청장 예방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박삼석 동구청장에게 물었다. “미국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의 ‘위안부는 매춘부, 소녀상은 증오의 상징’ 발언을 듣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면담 신청을 거절했다. 앞으로도 만나지 않겠다”고 한다. 총영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국민 감정도 그렇고, 만나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뜰 것 같다”는 박 청장의 걱정은 기우다. 일국을 대표해 부산 사람과 소통하겠다는 외교관을 내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2017-07-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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