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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사회면] 사건(2) ‘공공의 적’ 사건

[그때의 사회면] 사건(2) ‘공공의 적’ 사건

손성진 기자
입력 2017-07-02 17:42
업데이트 2017-07-03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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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발생한 대한한약협회 서울지부장 박모씨 부부 피살 사건의 범인은 다름 아닌 박씨 부부의 장남이었다. 아들이 부모를 흉기로 잔혹하게 찔러 죽인 이 존속살해 사건은 영화 ‘공공의 적’의 모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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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박한상(당시 23세)은 지방 대학에 다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학생 신분으로 유흥가를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자 부모는 주변 권유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박은 미국에서 더욱 방탕해져서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을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몇 달 안 돼 3만 달러를 잃고 뒤늦게 알아챈 부모로부터 “그렇게 살려면 호적에서 파 가라”는 심한 꾸중을 듣자 박은 미국 영화에서 본 대로 부모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박의 부모는 한약상을 해 100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박은 부모를 죽이면 그 재산이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어학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박은 흉기를 준비한 뒤 집에서 거짓 잠을 자다 5월 18일 밤 10시 20분쯤 부모가 귀가하자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혈흔을 남기지 않으려고 옷을 모두 벗고 침대보로 몸을 감싼 뒤 양손에 흉기를 들고 안방에서 잠에 든 부모를 각각 40~50차례나 찔러 숨지게 했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가 온몸에 묻은 피를 씻고 미국 영화에서 본 대로 휘발유를 부어 불을 질러 범행 흔적을 지우려 했다. 박은 장례식장에서도 일부러 정신을 잃는 척하는 등 범행을 숨기려 했다.

경찰은 박을 처음부터 의심하긴 했지만 명백한 증거도 없고 “설마 부모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은 몸에 묻은 핏자국과 이빨 자국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간호사와 큰아버지의 제보로 박은 범행 8일 만에 덜미가 잡혔고 모두 자백했다. 박한상은 이듬해 8월 25일 사형 확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설경구와 이성재가 출연한 영화 ‘공공의 적’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고 한다. 물론 사건과 영화의 줄거리가 일치하지는 않고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내용만 같다. 범인 이성재는 학생이 아니라 펀드 매니저로 나온다. 영화에는 부모를 살해한 뒤 밀가루를 뿌리는 장면이 들어 있고 이를 모방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형제도는 있지만 집행을 20년 동안 하지 않은 사실상의 사형제 폐지 국가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7년 12월 30일 여자 사형수 3명을 포함해 23명을 마지막으로 사형시켰는데 박한상은 여기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박한상뿐 아니라 유영철, 강호순 등 세상을 뒤흔들었던 엽기적인 살인마들도 아직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박한상 사건을 보도한 당시 신문의 사회면.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2017-07-0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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