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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 없는 반환기념식” “현실 똑바로 봐야”… 고뇌하는 홍콩

“홍콩인 없는 반환기념식” “현실 똑바로 봐야”… 고뇌하는 홍콩

입력 2017-06-26 17:52
업데이트 2017-06-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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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달 1일 홍콩 반환 20주년

시진핑 참석 등 기념행사 비용 10년 전의 9배 900억원 넘어
“中 신식민지되어 가는 현실에 지금의 홍콩은 너무 암울하다”
“30년 후 中에 완전 흡수 예정…거부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다음달 1일 반환식이 열리는 홍콩 컨벤션센터 내부 모습. 홍콩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다음달 1일 반환식이 열리는 홍콩 컨벤션센터 내부 모습.
홍콩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홍콩 사람 역시 중국인이어야 하지만, 나는 그냥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

26일 홍콩 컨벤션전시센터 부근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만난 홍콩대 법대생 크리스 추이는 1997년생이다. 그가 태어난 해에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됐다. 식민지 시절의 생활을 전혀 모르는데도 추이는 “지금보다는 그때가 더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지금의 홍콩이 너무 암울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함께 나온 친구 글로리아 훙은 약간 생각이 달랐다. 홍콩인에게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던 식민지 시절은 “단지 영국에게 잠시 빌렸던 시간일 뿐”이라고 했다. 글로리아는 “영국의 통치 시절을 그리워할 게 아니라 중국의 신식민지가 되어 가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 친구는 신입생 시절인 2014년 가을 79일간 거리에 있었다.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을 점령하는 ‘우산혁명’에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홍콩 학생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를 억지로 주입하려는 교육정책에 반대했고, 홍콩인이 직접 홍콩의 행정수반을 뽑는 직선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대륙의 일방통행에 저항했다. 하지만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크리스는 “중국 공산당에 철저히 짓밟힌 실패한 혁명”이라면서 “졸업 후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리아는 “비록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홍콩의 운명은 홍콩 사람에게 달렸음을 깨달았다”면서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홍콩 최대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21)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이날 오전 당원 및 범민주파 단체들과 함께 센터 인근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에서 주권반환 상징물인 바우히니아상에 검은 천을 씌우는 시위를 벌여 당국을 긴장시켰다. 광장 경비요원들의 저지가 실패한 뒤 경찰이 출동해 검은 천을 제거했다. 컨벤션전시센터는 현대 홍콩의 영광과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1997년 7월 1일 0시를 기해 이곳에 게양됐던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중국의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라갔다.

센터 주변 곳곳에선 ‘주권반환’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29일 홍콩 ‘시찰’에 나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곳에서 반환 기념식을 주관하고, 우산혁명을 강제 진압하는 데 앞장섰던 캐리 람 신임 행정장관 등 홍콩의 5기 내각 각료들로부터 충성을 다짐받는다.

중국과 홍콩은 이번 기념식을 위해 9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홍콩 내 300여건, 중국 본토와 해외 200여건 등 모두 500여건의 크고 작은 기념행사를 여는 데 사용되는 예산이다. 주권 반환 10주년이었던 2007년 행사 경비의 9배에 달한다.

크리스와 글로리아는 “‘중국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고 기획됐을 뿐 정작 당사자인 홍콩인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반환기념식이 ‘홍콩인에 의한 홍콩통치’가 ‘중국 공산당에 의한 홍콩통치’로 변했음을 알리는 행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홍콩 사람들 모두가 중국에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컨벤션센터 앞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마샤오룽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것을 중국 탓으로 돌려서는 홍콩의 쇠락만 재촉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국이 홍콩을 세계 금융의 거점지로 개발한 덕택에 아시아 각국이 겪는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고, 20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면서 “현재의 양극화 심화와 홍콩의 성장률 둔화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중국의 통제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을 받아들이자는 현실론은 장년층일수록 강했다. 50대 남성 존 리는 “홍콩이라는 독립국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결론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일국양제와 고도자치가 끝나는 30년 뒤면 완전히 중국에 흡수될텐데 지금부터 이를 준비해야지 거부해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철부지 독립파에 경도된 젊은이들은 홍콩 독립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영국의 마지막 통치자 크리스토퍼 패튼의 조언을 새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7-06-2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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