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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이사람 e향기] “공무원은 대민 봉사가 제일… 이념 따르려면 정당으로 가라”

입력 2017-06-21 17:10
업데이트 2017-06-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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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인 교육행정전문가 최문환 서울시교육청 서기관

최문환(60) 서울시교육청 서기관은 서울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을 마지막 보직으로 이달 말 퇴직한다. 최 서기관은 1982년 서울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교육행정공직을 시작했다.

35년간 교육행정의 한길에 혼신의 열정을 바쳐 온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로 ‘서울시교육청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시절의 ‘육영재단’을 꼽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기였던 2006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만 3년이다. 이때 그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의 이사취임취소 처분을 했다. 이 기간 그는 정수장학회·삼성이건희장학재단 업무도 함께 봤다.
최문환 서울시교육청 서기관
최문환 서울시교육청 서기관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으로 보직 발령을 받아 가니까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하려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부임하기 전에 이미 ‘청문회를 실시한다’고 언론보도를 통해 공표된 상황이었다”는 그는 “그때 육영재단 업무처리에 있어 외압이나 이념에 치우칠 경우 사회적 큰 파장이 일 수도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법과 원칙을 고수하느라 고군분투한 기억이 새롭다”고 회상했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지 않습니까.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라며 “이념을 찾으려면 정당으로 가라”는 최 서기관. 이는 최 서기관이 공익법인 담당 사무를 수행하는 동안 겪었던 뼈저린 체험담이다. “공직자는 정치논리와 이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편익만 보고 가야 한다”는 최 서기관의 당부가 가슴에 새겨지는 이유다.
최문환 서기관이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재직시 작성한 소명서와 단란한 가족.
최문환 서기관이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재직시 작성한 소명서와 단란한 가족.
다음은 일문일답.

→이달 말로 교육행정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공직에 투신한 지 얼마 만인가.

-서울시 지방직과 총무처가 시행한 국가고시 2곳에 응시했다. 서울시가 먼저 1981년 9월 28일 중구청 세무1과로 공직 발령을 냈다. 그리고 이듬해 총무처에서 문교부로 공직 발령을 내자, 서울시교육청이 동작초등학교 서무과장(9급)으로 발령을 냈다. 그래서 서울시 공직을 사직하고, 교육행정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돌아보니 35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35년 교육행정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는.

-내가 뭐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나름대로 열심히 많은 업무를 보았지만, 지나고 보니 ‘파편’이다. 35년 공무원 생활이란 게 일관된 업무가 아니다. 전체를 보고 아우르는 안목은 길렀을지 모르지만 전문성을 키울 수 없었다. 아쉽다.
‘송은잡기’. 최 서기관이 생전의 부친께서 남긴 한시 등을 엮어 편찬한 책이다.
‘송은잡기’. 최 서기관이 생전의 부친께서 남긴 한시 등을 엮어 편찬한 책이다.
→35년 공직생활에 인생관도 여러 번 바뀌었을 법한데.

-공무원으로서 어떤 인생관을 가질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또 개선해 나가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공무원이 뭐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념과 철학을 갖는다면 그건 정당에 가야 하지 않겠나.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다. 공무원은 싫은 업무도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 공무원은 대민봉사가 제일이다.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게 공무원이다. 정직하고 신뢰받는 행정을 위해 나름 열심히 했다.

→공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육영재단이다. 2006년 1월 1일자로 공익법인 담당 사무관(팀장) 보직을 받아 가보니, 육영재단 설립을 취소시키려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2월까지 육영재단 취소를 위한 청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공익법인이면 정수장학회 업무도 봤는가.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 재력가 김지태의 재산을 강탈해 설립된 재단이라고 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부산 김지태 씨 유족도 이를 돌려 달라고 소송을 낸 터였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직접 나와 우리를 조사했다. 여러 검토가 있었지만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 ‘강탈한 위법은 맞지만 시효가 지나 돌려줄 수 없다’는 판결로 마무리됐다.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익법인 업무가 때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할 때가 있다. 아마 내가 담당할 때도 그러한 때였던 것 같다. 선거 때마다 정치적인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삼성꿈나무장학재단’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그때 나는 담당 팀장이었다. 교육부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당시 기부금 처리가 이슈가 되었었는데 교육청이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부가 직접 하게 된 거다.

→앞에서 노무현 정부 때 육영재단 설립취소 절차가 진행됐다고 했다. 그런데 설립 취소되지 않았는데.

-공익법인법에 재단설립을 취소하려면 3단계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사전원취임 취소’를 통해 당해 법인에 정상화 기회를 부여한 후에도 정상화 되지 못할 경우 청문회 절차를 거쳐 마지막으로 설립을 취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취임 취소를 먼저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청문회라는 것은 설립취소를 할 경우 억울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한 것이다.

→청문회가 그렇게 중요한가. 청문회는 어떻게 진행되나.

-청문회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청에서 청문위원을 선임해 청문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재단 사람을 불러서 객관적으로 진행하는 거다. 그 청문회 결과 개선의 여지가 없다거나 정상화될 수 없다는 판단을 객관적으로 내렸을 때 그때 ‘취소’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공서에서 설립취소를 명했을 때 육영재단의 설립취소가 정당한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행정절차법으로 청문회 규정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왜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의 무리수를 두려고 했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시 국정감사의 이슈였기에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공익법인 교육행정 경험을 살려 석사학위도 취득했다고 하던데.

-그렇다. 대민 봉사를 위해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은 공무원의 기본 도리가 아닌가. 행정 경험도 중요하지만 학문적인 지식 습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무자 시절에는 야간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했고, 간부가 되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했다. 논문을 제출할 즈음 마침 공익법인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관련 업무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에서 제안한 일부가 업무에 채택되어 보람이 있었다.

당시 공익법인업무는 각 지역교육청에서 처리하고 본청은 정관변경 등 일부 주요업무만 보았었다. 대민 업무인 데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라 모두 기피하는 업무다 보니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하지 못했다. 지금은 본청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민원인에게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개선되었다.

→‘송은잡기’란 서적을 편찬했다는데.

-별거 아니다. 소박한 책 제호다. 송은은 아버님의 자호고, 잡기는 여러 가지 기록을 의미한다. 작년 2월 아버님이 영면하실 때 영전에 바친 조그만 책자다. 아버님은 한학을 하셨다. 한시와 비문, 서예작품을 많이 남기셨다. 그대로 두기가 아까웠다. 이를 모아서 엮고, 가족사와 조상도, 족보와 제례를 담아 조그만 책으로 만들었다. 가족에게는 아버님이 주신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귀가 따갑게 들은 일반 원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업무처리’ 다. 업무처리에 있어 공성성과 공공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키는 덕목은 ‘신뢰’와 ‘유연함’이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고 애쓰고,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장 시절에는 직원들에게 ‘서로 스트레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라’고 했다. 공무원이 되어 자리가 올라가면 권위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민원인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자고 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민원을 대하자. 우리 국민이 이런 공무원들이 많이 있다고 신뢰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공무원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주요 프로필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1988년 국제대학교 경제학사

2007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서울특별시 장학법인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

1980년 서울시에서 1년 봉직

1981년 8월 1일 이후 서울시교육청에서 35년 봉직.

주요보직으로 서울시의회 교육협력관, 서울시교육청 예산담당관, 성동광진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역임.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로연수 중

2017-06-22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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