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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의 거듭나기] 또 문화는 뒷전인가

[최준식의 거듭나기] 또 문화는 뒷전인가

입력 2017-06-11 22:38
업데이트 2017-06-1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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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요즘 신문을 보면 새 정부가 들어서서 기관장들을 바꾸느라 분주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인선을 보면 너무 정치, 경제 일색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와 경제를 다루는 부서의 인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문화에 대한 배려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체부 장관에 시인인 사람을 내정한 것 정도이다. 인선에만 문화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새 대통령이 설파하는 정치 철학에도 문화에 대한 고려는 발견하기 어렵다.

공연한 노파심인지 몰라도 또 예의 한국인들의 문화 경시 현상이 도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문화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생각해 액세서리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바쁜 세상에 무슨 문화냐? 문화를 찾을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문화를 지극히 협소하게 보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문화 개념은 대체로 공연이나 전시 같은 특별한 문화적 행위만을 문화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를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곳에 가서 즐기는 특별한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문화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문화는 이런 것만이 아니다. 문화는 인간의 삶 전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종교학이 전공이지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종교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구원받는다고 말이다. 종교는 추상적인 개념이라 우리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는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절이나 교회 같은 종교 기관에 갔을 때 만나는 것은 종교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문화, 특히 예술 문화라는 구체적인 것이다.

교회나 절에 갔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건물, 즉 건축문화를 만나는가 하면 아름다운 불상, 즉 조각문화를 만난다. 또 교회에서 찬송가를 빼면 예배에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음악문화는 소중하다. 물론 염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가 감명 깊게 읽는 기독교 성서나 불경은 그것 자체가 문학이다. 만일 예배나 예불에서 이런 것들을 다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종교적일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우리의 삶을 훨씬 품격 있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다. 아주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맥주와 막걸리를 마실 때에도 거기에 맞는 문화가 있다. 막걸리잔에 맥주를 부어먹으면 당최 맛이 안 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이처럼 우리는 적절하고 좋은 문화가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를 좁게 생각해 예술 공연을 보고 전시회장에 가면 자신이 문화를 향유하는 줄 안다. 이렇게 생각한 대표적인 사람이 박근혜였다. 그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공연장에 가면 풍성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이 문화가 있는 날이라면 다른 날은 문화가 없다는 것인가?

문화란 사람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 언어문화, 의식주와 관계된 생활문화, 혼상례 같은 의례문화, 조직문화, 교육문화 등등 모든 것이 문화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언어문화는 비루하기 짝이 없고 결혼이나 상례문화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조직문화는 굴종만 강요한다. 교육은 어쩔 건가? 교육 개혁이 잘 안 되는 것은 그와 관련된 문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화를 고치지 않고서 제도만 바꾸는 것은 일의 선후가 바뀐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가 잘 안 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가 잘못된 것이다.

내 눈에 지금 한국인들은 본인들이 만든 잘못된 문화에 갇혀 아주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어떤 책의 제목이 ‘한국: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이겠는가? 한국인들인 어떤 민족도 하지 못한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삶에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기쁨을 되찾으려면 높은 문화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행복은 없다.

2017-06-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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