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작곡가의 인연

입력 : ㅣ 수정 : 2017-05-0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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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달’로 불리는 아름다운 5월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나’에 대한 관심을 불려 가기에도 적합한 시간이다. 나와 가장 가깝고 명확한 관계 맺음을 이룬 가족들을 돌아보고 챙기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 마무리를 의미 있게 해낸 사람이라면 자신의 주위를 이전보다 크고 넓어진 눈으로 바라보게 마련이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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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피아니스트

일천한 인생 경험이지만 내가 늘 의식하는 사회 법칙 중 첫 번째는 하찮고 일시적인 인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존감, 지적 능력, 이해관계 등과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갖고 보이는 ‘인격’과 관련된 문제다. 바깥의 환경보다는 내면에 더 충실하고, 오로지 나만의 가치판단으로 내 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끄집어내야 하는 예술가들에게도 이런 원칙은 그대로 적용돼 왔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걸작들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가 아닌, 주변인들과의 관계와 거기서 만들어진 환경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오보에 등 목관악기의 음색을 섬세하게 나타낸 걸작을 많이 남겼는데, 약간의 예상 착오를 일으킨 악기도 있었다. 그는 어찌 된 일인지 플루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너무 오래된 악기라는 인식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22살 때 당대 최고의 플루티스트 요한 벤틀링을 알게 됐고, 그의 권유로 플루트를 위한 두 곡의 협주곡과 네 곡의 4중주곡을 썼다. 벤틀링은 플루트 음악을 사랑하는 드 장이라는 귀족의 요청을 모차르트에게 전달해 훌륭한 걸작을 탄생시키게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작곡가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주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작업이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플루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작품이 됐으니, 모차르트만큼 벤틀링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듯하다.

펠릭스 멘델스존과 로베르트 슈만은 한 살 차이 친구였다. 둘은 여러 분야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에게는 페르디난트 다비트라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동료가 있었다. 유명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악장이던 다비트의 다양한 조언으로 완성된 곡이다. 또 다비트는 당시 정신병에 걸려 슬럼프를 겪던 슈만을 격려해 그가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쓰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 사람은 교수로도 인연을 맺는데, 멘델스존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슈만과 다비트가 각각 작곡과, 관현악과 교수로 임명돼 함께 일하기도 했다.

만년에 병석에 누워 있던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옆에서 연주를 하며 자신을 위해 작품을 써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은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였다. 그의 응원 덕에 프로코피예프는 다시금 힘을 내 생의 마지막 불꽃을 첼로 작품으로 태우게 됐고,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적 교향곡’, 첼로 소나타 등의 걸작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는데, 좋은 작품을 위해 한참 후배인 피아니스트에게 도움을 구했다. 쇼스타코비치는 1950년 제1회 국제 바흐 콩쿠르에서 1등을 받은 당시 26세의 피아니스트 타티야나 니콜라예바를 찾아가 ‘바흐의 평균율 곡집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청했다. 니콜라예바는 그 부탁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작품이 바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곡 중 최고의 대작인 ‘스물네 개의 프렐류드와 푸가’ 작품 87이다.

쑥스러워서, 새삼스러워서 하기 어려운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지만, 막상 입을 열면 어렵지 않다. 상대는 내가 늘 사랑하고 내게 많은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고마운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그들과 살갑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때 이 계절은 더 예뻐지리라.
2017-05-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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