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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우리, 우리네 인생…전북 정읍의 전통장 ‘샘고을시장’을 가다

정다우리, 우리네 인생…전북 정읍의 전통장 ‘샘고을시장’을 가다

이언탁 기자
입력 2017-05-07 17:38
업데이트 2017-05-08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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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들어선 대형마트로 인해 많은 전통시장들이 쇠락해 가고 있다.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과 큰 온도 차를 보이는 전통시장을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전통시장이 있다.
샘고을시장 전통장을 견학하러 온 정읍시내 어린이집 아이들이 튀밥 튀기는 모습이 신기한 듯 귀를 막고 재미난 표정을 하고 있다.
샘고을시장 전통장을 견학하러 온 정읍시내 어린이집 아이들이 튀밥 튀기는 모습이 신기한 듯 귀를 막고 재미난 표정을 하고 있다.
●100년 동안 한자리 지키며 서민 애환 지켜 봐

전북 정읍의 ‘샘고을시장’은 1914년에 문을 연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시장이 있던 자리에 샘이 많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이곳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백 년의 세월, 시장 점포들은 현대화되고 도로도 새로 깔렸지만 시끌벅적, 활기찬 시장 풍경은 예전 그대로다. 긴 역사를 이어온 만큼 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진하게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오래된 방앗간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다.

소문난 곡창지대답게 스무 개 남짓 방앗간들이 모여 있는 곳. 어릴 적부터 방앗간 일을 배우기 시작한 대동방앗간의 안정삼씨는 50년 가까이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방앗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이곳은 활기 넘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이웃 전주에서도 단골 아지매들이 무리지어 찾아온다.
새댁네 방앗간집에서 흘러 나오는 참기름 냄새가 참깨 볶는 향과 함께 온 시장에 고소하게 퍼져 나간다.
새댁네 방앗간집에서 흘러 나오는 참기름 냄새가 참깨 볶는 향과 함께 온 시장에 고소하게 퍼져 나간다.
한국전통국악기 제작 및 연주전공 명인 서인석 전북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 보유자가 시장 안 전승명가에서 장고를 만들고 있다.
한국전통국악기 제작 및 연주전공 명인 서인석 전북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 보유자가 시장 안 전승명가에서 장고를 만들고 있다.
시장 통의 민속대장간 역시 6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정개동씨는 숙부로부터 물려받은 백 년 넘은 공구들 옆에서 호미를 만드는 작업에 빠져 있다. 정씨는 “기계로 만들면 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지만 하루 종일 함마질을 해서 만든 것만 못하다”며 작업을 계속했다.

나형식씨의 뻥튀기 가게 앞은 뻥~ 뻥~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경하는 아이들로 늘 북적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시를 쓴다. 콩을 튀기러 온 손님들의 모습에서도, 눈 쌓인 시장 골목길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나씨는 “곡식을 튀길 때마다 시를 함께 튀기고 있다”며 시적(詩的)으로 말했다.
장터 속 2000원짜리 짜장면 집은 검소함이 몸에 밴 우리 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장소이다.
장터 속 2000원짜리 짜장면 집은 검소함이 몸에 밴 우리 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장소이다.
전통장터 민속대장간은 대를 이어 40여년 동안 전통적인 농기구 제작을 하며 예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시뻘건 쇠와 동고동락을 해 오고 있다.
전통장터 민속대장간은 대를 이어 40여년 동안 전통적인 농기구 제작을 하며 예전의 풍경을 간직한 채 시뻘건 쇠와 동고동락을 해 오고 있다.
간만에 시장 미장원에서 마음을 나눌 벗을 만난 아낙들이 파마하느라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간만에 시장 미장원에서 마음을 나눌 벗을 만난 아낙들이 파마하느라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채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는 13개의 방앗간이 모여 있다. 흩어져 있는 것까지 합치면 그 수가 스무 개에 달해 소문난 곡창지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덕유산 골짜기마다 쑥이 넘쳐나는 4~5월이면 방앗간을 나선 쑥 냄새가 옆집 미장원과 솜털집, 대장간을 지나 국밥집을 돌아 샘고을시장 전체에 퍼진다.
시장에는 13개의 방앗간이 모여 있다. 흩어져 있는 것까지 합치면 그 수가 스무 개에 달해 소문난 곡창지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덕유산 골짜기마다 쑥이 넘쳐나는 4~5월이면 방앗간을 나선 쑥 냄새가 옆집 미장원과 솜털집, 대장간을 지나 국밥집을 돌아 샘고을시장 전체에 퍼진다.
●50년 된 방앗간·60년 된 대장간… 아낙네의 놀이터

시장의 터줏대감인 장금순 할머니는 3대째 같은 자리에서 순댓국집을 하고 있다. 수십 년 단골손님들의 애정은 한결같다. 순댓국으로 점심을 먹고 있던 김옥실씨는 “어릴 적 아버지 손잡고 와서 먹었던 그 맛과 지금의 맛이 변함이 없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10여곳이 한 집 건너 한 집씩, 방앗간 수만큼 많은 미용실은 장 보러 온 아낙네들의 놀이터이자 사랑방이다. 참깨나 들깨, 떡쌀, 고추, 쑥 등을 방앗간에 맡겨 놓고 기름이 짜지고 떡이 쪄지는 동안 꼬불꼬불 멋내기 파마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 사람들과 자식 자랑 등 수다 삼매에 빠진다.
옛날 정읍 샘고을시장은 부안, 고창, 장성, 순창, 함평 등 5개 군에서 기차로 모여든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금도 점포가 280여개나 되고 그 안에서 장사하는 상인의 수만 500명이 넘는다.
옛날 정읍 샘고을시장은 부안, 고창, 장성, 순창, 함평 등 5개 군에서 기차로 모여든 손님들로 북적였다. 지금도 점포가 280여개나 되고 그 안에서 장사하는 상인의 수만 500명이 넘는다.
이처럼 백 년의 세월을 지켜온 전통시장엔 시장을 찾는 이들의 추억과 정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상인들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통시장이 점차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고광호 시장상인회장은 “먹거리 시장을 활성화하고 친절함을 더해 관광객들을 도심 전통시장으로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우리 재래시장이 살아남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은 문화와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지역경제의 실핏줄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지친 도시인들의 삶까지 위로하는 다채로운 문화의 장과 쉼터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정읍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2017-05-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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