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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특집] 남해 보리암 능원 주지스님 “모든 이의 간절함 끌어안는 관음보살 품”

[석가탄신일 특집] 남해 보리암 능원 주지스님 “모든 이의 간절함 끌어안는 관음보살 품”

입력 2017-04-27 17:26
업데이트 2017-04-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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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고 듣고 위로하는 것이 수행자의 역할”

어려운 경제 상황,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일…. 세상살이가 팍팍할수록 유명한 기도처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관세음보살은 그들의 기도를 듣는 보살이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어머니의 이미지로 많이 표현된다.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기댈 수 있는 품을 내어준다는 뜻일 테다.

경남 남해군 금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 해발고도 681m 절벽 위에 국내 3대 관음성지로 불리는 보리암이 있다. 이곳에서 기도하면 한 번은 소원을 성취한다고 알려진 기도처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산도 보광산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을 개국한 뒤 그 영험에 감사하는 의미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었다는 뜻이다. 후에 현종은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인접한 곳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귀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높은 길을 오르다 보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의 모습과 그에 맞닿아 펼쳐진 남해 바다를 보노라면 마음이 먼저 편안해진다. 산의 정상에 가까운 곳인데도 산죽이 속세의 번뇌를 차단하듯 신비롭게 보리암을 둘러싸고 있다.

저마다의 소원을 가지고 보리암에 오른 이들을 맞이해 온 능원 주지스님은 “종교와도 상관없이 오는 분들 누구나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 마음을 삶의 현장에 가지고 나가셔서 오래 유지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능원 스님은 “보리암의 스님들도 관세음보살님처럼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리암은 기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신자들 외에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매년 5000만원 넘는 장학금을 내놓고, 각종 시설과 어려운 이웃에게 직접 나눔을 실천한다.

관음보살의 마음을 나누는 보리암을 찾아 능원 스님에게 대화를 청했다. 보리암의 영험함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기도의 참의미와 현대사회를 향한 조언으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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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맞는 보리암의 전경(좌)과 해수관음보살상.
일출을 맞는 보리암의 전경(좌)과 해수관음보살상.
→보리암은 환경부터 참 신비로운 느낌입니다. 원효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한 곳으로 유명한데, 또 다른 이야기가 더 있습니까.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금산 곳곳에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보리암 법당과 산신각이 있는 축에서 주로 기도를 하셨을 거라고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이 금산 중에서도 보리암이 있는 여기가 중심이고 핵심이라고 하거든요.

또 보리암에서 30㎞ 정도 바다로 나가면 ‘세존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다녀가셨다고 하는 섬입니다. 부처님이 금산에 오셨다가 여기서 돌을 떼서 배를 만들어 세존도로 지나갔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영험한 기도처로 여겨졌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사실 금산이 좁은 산인데도 바위 밑이나 굴에 보면 옛날 스님들이 수행하시던 터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토굴도 곳곳에 많은데 지금은 헐었어도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수행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런 바위 밑이나 굴에 한 번 들어가 앉아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금산은 그런 종교적인 체험, 기도체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갑니까.
능원 주지스님
능원 주지스님
-주말 이틀이면 1만 명 넘게 다녀갑니다. 평일에도 하루 2000명 남짓 오셔서 기도를 하시고요. 이곳이 일출 명소이기도 해서 1월 1일엔 7000명 정도가 옵니다. 공간이 넓지 않아서 해를 볼 수 있도록 서 봐야 3000명이면 꽉 차 보이는데, 해돋이 인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지요. 새해가 시작되면 개인이나 국가가 잘되길 바라는 염원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들이 모이는 겁니다. 이 깊은 산속에 빼곡하게 선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거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종교 인구 통계 조사에서 불교 인구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곳에선 그런 걸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작년에 비해서 더 많이 오고 있어요.

→기도하는 분들을 많이 지켜보셨을 텐데, 소원을 비는 이들에게 좋은 기도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지켜보니,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의 말씀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보리암에 와서 기도하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더라’ 였습니다. 그다음엔 ‘한 가지는 꼭 들어주시는데, 나를 위한 기도를 하면 안 되고 남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더라’라고 말이 바뀌었어요. 요즘에는 ‘보리암 관세음보살님은 누구나 차별 없이, 종교와도 관계없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라고요.

종종 이런 얘기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내 기도가 이뤄지는 건,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기도와 정성이 오늘 내 기도를 이뤄줍니다. 오늘 내 기도도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그 기도가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이뤄줄 겁니다.

→보리암 관음보살님은 종교와 관계없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오신다면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좋겠습니까.

-소원을 털어놓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종교를 초월해 중요한 마음 같아요. 종교가 다른 분들은 오셔도 법당엔 안 들어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럴 때 ‘부처님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다’라고 말씀드려요.

저도 교회나 성당에 갈 때가 있는데, 예배당에 가면 십자가 앞에 나가서 합장으로 예를 갖춥니다. 제 나름대로 존경의 표시를 하는 것이지요. 법당처럼 예배당도 성전이고 예수님 또한 존경할 만한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차별 없는 보살핌, 남을 위한 기도 등의 말씀은 갈등이 심한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교훈인 것 같습니다.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떤 하나의 방법만을 전하기엔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신라 말기 충담사가 지은 향가 ‘안민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이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지요. 우리 또한 각자 다 역할과 위치에 충실하면 됩니다. 대통령답게, 국회의원답게, 장관답게 말이지요. 갈등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실로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하면서 생겨납니다.

→보리암이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는 것도 그 ‘역할’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도처라고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지역민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사찰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긴 어렵습니다. 마땅한 역할을 해야지요. 그런데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베푸는 일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도움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세심하게 배려하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합니다.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도 뭔가 절박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직접 스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절에 있는 시간이라면, 사람을 피하거나 안 만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도가 만나자고 하면 꼭 만나고, 모르는 분들이라도 신분만 정확히 밝혀주시면 만납니다. 만나서 주로 이야기를 듣지요.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게 힘이 되나 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어머니에 많이 비유를 합니다. 보리암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도량인데, 그렇다면 이곳 스님들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출가를 하신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출가의 계기나 출가 이전의 얘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물어봐도 답을 안 해요. 자꾸 과장이 되더라고요. 자세한 말씀은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저도 나름대로 절박한 것이 있었지요. 그때는 니체와 사르트르 책들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보리암을 찾는 분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도와드릴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오시는 분들이 편하게 기도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보리암에 오시는 것만으로도, 금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평안을 얻으신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법문을 듣는 게 아니라고 해도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부디 그 기도하는 마음, 수행자의 마음을 삶의 현장에 돌아가서도 잘 유지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분이 지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우리 서로가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서로 같은 부분, 즉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요. 서로가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갈등을 넘어 화합할 수 있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2017-04-2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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