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의 절절한 모성애 연기는 이미 익숙한 터라 ‘또?’라는 물음표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국 영화에서 이런(원톱) 역할이 여배우에게 주어질 기회가 자주 없잖아요.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다른 배우가 먼저 결정할까 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꽉 잡아버렸죠.”
전작에서도 노인 연기를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젊은 미희와 늙은 미희를 오가며 1인 2역을 하듯 연기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이를 향한 절실한 마음을 표현하고 두 미희를 더 확실하게 구분하려고 후두암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설정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목소리에 집중하면 감정이입이 잘 안 되고, 감정 몰입을 하면 원래 목소리가 튀어나와 힘든 부분이 있었죠.”
김윤진은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벽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한국에서는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에요. 미국에서는 피부 색깔에서 오는 한계가 있죠. 동양인, 그것도 동양인 여배우를 써 주는 경우가 많지 않거든요. 최근 3년간 매진했던 미국 드라마 ‘미스트리스’의 캐런도 원래 백인 캐릭터였어요. ‘로스트’나 ‘미스트리스’처럼 열린 마음의 제작진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예요. 놓치면 절대 안 되죠.”
영화에서처럼 시간을 거스른다면 돌아가고 싶은 시기가 있을까. “여자로서 30대가 가장 빛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미적으로 자신감도 있고 내적으로도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쌓여 두 다리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때죠. 그런데 현재의 노하우와 멘탈을 갖고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이 100배 더 나아요. 다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니까요.”
‘시간 위의 집’ 일정이 마무리되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오디션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며 웃었다. “한국과 조금 다른 게 할리우드에서는 톰 크루즈 정도의 월드스타가 아니면 대부분 오디션을 거쳐야 해요. 그런데 오디션에 영 요령이 생기지 않네요. 호호호. 한국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 아니라 아쉬운데, 욕심 같아서는 해마다 한 작품씩은 하고 싶어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