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혜수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현재 개헌 논의는 권력 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헌의 대상과 방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3월 15일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3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튼실한 국가 체제를 위해서는 무릇 ‘씨줄’과 ‘날줄’을 잘 조여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국회 간 권력 분점인 ‘씨줄’만 다듬으려 하고, 낡고 해진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분권인 ‘날줄’에는 정치권의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각 당의 대선 주자들도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방분권 공약의 포장은 해 놨지만 내용물을 가늠하기 어렵다.
분권은 대통령·국회 등 중앙 권력 구조의 수평적 분권, 중앙·지방 간 수직적 분권, 국가와 국민 사이 권력 분산이라는 3각 축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표적 사례로 자치입법과 자치재정에 관한 헌법 규정을 들 수 있다. 헌법 제117조는 지방정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법규인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령은 법률과 하위법인 시행령·시행규칙까지 포함한다. 즉 지자체가 지역 여건을 반영한 조례를 만들려 해도 중앙정부의 광범위한 ‘행정입법’에 제약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개헌 과정에서 ‘법령의 범위 안’을 ‘법률의 범위 안’으로 수정해야만,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을 줄일 수 있다.
또 헌법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자치재정권을 옥죄는 측면이 강하다. 지자체가 고유 권한으로 새로운 세목을 설치할 수 없다면 이는 진정한 자치를 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분권형 개헌에서는 조례로써 지방세(법정외세)를 신설할 수 있도록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지방행정 체제 개편 역시 분권형 헌법에 담아야 한다. 현재의 헌법으로는 시·도의 통합으로 새로운 거대 행정구역을 만든다 해도 그에 상응하는 폭넓은 자치권 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곧 마주하게 될 인구절벽·남북통일 시대 등을 감안하면 거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 헌법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앙·지방 간 수직적 권력의 배분을 위해서나 주민자치에 기초한 지역별 특색을 갖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같은 맥락에서 특별자치의 실시에 대해서도 헌법에 원칙적 규정을 두고, 그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자치단체의 종류를 헌법에 열거하자는 주장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지역 여건 변화에 따른 주민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종류를 시·도와 시·군·자치구로 명시할 경우 인구 소멸로 인해 존립 기반이 무너진 자치단체를 폐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시·군이 없는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는 위헌이 되고 만다.
국민에게 권한을 넘겨주는 국민분권도 빼놓을 수 없는 사항이다. 세세한 내용을 헌법에 담을 수 없을지라도 정부가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는 필요하다. 스위스처럼 헌법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국민에게 넘겨주는 이른바 ‘국민개헌안 발의제’ 도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 100만명 이상 서명을 받아 개헌안을 발의하면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의하도록 헌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이런 장치야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만 30년 만에 다시 열린 개헌의 창이 닫히기 전에 충분한 국민적 논의를 하되 지방과 국민에게 권한을 넘겨주는 지방분권과 국민분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 계산이 아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100년 대계를 반영한 실질적인 분권형 개헌을 촉구한다.
2017-03-31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