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진실이 아니다, ‘진실스러움’일 뿐이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7-03-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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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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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05년 10월 미국의 코미디언 스티븐 콜버트는 자신이 진행하는 심야 프로그램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단어 하나를 만들었다. ‘진실스러움’(truthiness). 허풍쟁이 전문가 흉내를 내는 그로서는 억지스러운 세계관을 명쾌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말이었다. 콜버트는 ‘진실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사실이란 증거도 없이 진실이라고 느끼는 특성’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바로 유행했고, 이듬해 메리엄웹스터 영어사전은 ‘올해의 단어’로까지 선정했다.

미국의 언론인 파하드 만주는 ‘이기적 진실’에서 “논리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믿기로 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진실의 판단을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증거나 논리가 아닌 직감이나 결단, 용기에 근거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거짓이나 음모도 상관없다. 진실스러움은 사회가 집단 대립에 빠지면 빠질수록,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진영으로 갈라지면 갈라질수록 위력을 떨친다. 콜버트가 이 말을 처음 쓴 당시 미국 역시 이라크 침공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그때의 미국뿐만이 아니다. 지금 세상 곳곳이 진실스러움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기적 진실’ 앞에 현실은 조각조각 나 버렸고, 입맛에 맞는 정보와 조각난 현실로 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와 무한한 선택권이 오히려 사실의 진위를 가려 내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얼마든지 어떤 진실도 끼워 맞출 수 있으며, 특정 집단에 맞춰 고의로 사실을 왜곡하는 매체가 그 믿음을 마음껏 키워 주고 있다. 사실이나 진실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돼 버렸다. 진실스러움은 모든 것을 자기 믿음에 맞춰 해석하거나 받아들이는 ‘편향동화’에 빠지게 한다. 본질을 외면한 엉뚱하고 조작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리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이 비슷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똘똘 뭉치고, 기존의 믿음에 맞춰 증거를 해석하는 선택적 노출과 지각을 고집한다. 그 대상이 가짜 전문가라도 상관없다. 뉴스가 객관성이 없어도, 거짓과 조작이라도 괜찮다. 파하드 만주는 “진실스러움은 곧 우리가 선택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 선택은 하나의 현실만 믿고, 나머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불신하기로 결심하는 행위이다. 그 때문에 집단화되면 될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위험해진다. 그들은 시야를 더욱 좁혀 동류 의식을 강화하고, 새로운 변화나 이야기보다 경험에 집착하고, 자신들의 믿음에 동조하는 파워맨과 미디어를 앞세운다.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조차도 진실을 외면한다.

진실스러움은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신뢰가 아닌 특수화된 신뢰 집단을 상징하는 ‘박사모’나 ‘문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에 와서는 미디어 전략에 더 발 빠르고 교묘한 진보보다는 오히려 보수 성향의 집단에서 더욱 강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명백한 ‘사실’인 현장과 자료, 검찰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음모와 편향, 조작이라면서 부정했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한 진영에서 한발 떨어진 사람들의 선택과 믿음까지 또 다른 ‘진실스러움’으로 몰아버렸다. 탄핵당한 대통령은 자기만의 또 다른 ‘진실’만을 고집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가짜 뉴스’도 마찬가지다. 이 독버섯이 대선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지도 모른다. 정치적, 이념적 지향점만 같으면 그것이 가짜이든, 거짓이든, 과장이든 무조건 믿으려는 진실스러움의 약점을 파고들 것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거짓과 이기적 진실로 깊이 병들어 있는지 실감했다. 현실은 조각나고, 이성적 사고는 무시되고, 자기 믿음만 진실이 돼 버렸다. 이런 곳에서 어찌 신뢰와 소통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모든 대선 주자들이 화합을 외치고 있다. 이번 당선자만큼은 정말 다르기를. 스스로 가장 먼저 자신의 진영에서, 그리고 ‘진실스러움’에서 빠져나오기를.
2017-03-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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