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정치가 부추기는 증오 사회/이동구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7-03-2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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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원수처럼 대하는 증오사회를 정치인들이 부추기고 있어
일부 후보들 네거티브전략 당연시… 언어의 품격은 대통령의 조건
독설 일삼는 후보 표 주지 말아야

“부역이라뇨,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탄핵 정국으로 정치권이 한층 소란스럽던 지난해 말 국회에 출석한 황교안 권한대행이 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발끈한 답변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야권 정치인들은 부역자란 말을 곳곳에서 사용했다. 공무원에게도 “부역 행위를 저지르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심지어 세종시로 국회, 청와대 등이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부역자라고 비난한 경우도 있었다.
이동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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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구 논설위원

부역(자)이란 나라에 반역이 된 행위나 반역자를 도운 사람이란 의미다. 세상의 그 어떤 말보다 공포감과 수치심을 준다. 만약 부역자로 낙인찍히면 자신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지워지지 않는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나치 통치에서 벗어난 프랑스 국민과 스페인 내전 중에 벌어졌던 부역자에 대한 형벌들을 떠올린다면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일제강점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부역자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탄핵이란 정치적인 목표를 이루고자 내뱉은 이 무서운 단어가 이제 정치인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도 시시때때로 사용된다고 한다. 두려운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를 증오사회, 혐오사회, 분노사회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보다 부자이거나 재능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미워한다. 힘없는 여성이나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목숨까지 앗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고 부르며 편을 가르고,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무슨 철천지원수나 되는 것처럼 상대를 비난한다. 특정 지지 세력들은 상대를 비방하는 막말에 동조하며 동료 의식 내지는 애국 투사가 된 양 함부로 행동한다.

언어는 개인의 생각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갈릴레오가 “알파벳 스물넉 자로 다른 사람과 가장 은밀한 생각을 소통하는 방법을 발견한 일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 습관이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을 하게 되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주게 되고 상대방의 우호적인 행동을 이끌어 낸다. 반대로 비관적이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면 상대는 화를 내고, 자신 또한 공격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작가 모파상은 “인간이 말하는 단어들은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을 신중히 하라는 충고다.

정치는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고, 행동으로 이끌어 내는 종합 예술과도 같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한때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폭력이 앞섰다. 민주화 과정에서 빚어진 정치인들의 몸싸움 장면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무수히도 소개됐다. 이제 국회선진화법 등 정치 환경이 변하면서 정치인들의 몸싸움 장면은 많이 줄어들었다. 정치 환경이 진일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대선 정국이 되면서 막말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어 정치인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학살 세력의 잔당, 부패 세력 등 상대 진영을 비방하는 것에서부터 후보의 인신공격에 이르기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일부 대선 주자는 상대를 비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당연시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정책 제시보다는 비방, 독설에 희열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말이라는 것은 반은 말하는 사람의 것이며, 나머지 반은 듣는 사람의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막말과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높은 수준의 자질과 인품을 갖춰야 한다. 상대방의 과거 잘못을 부각시키며 비방과 독설, 궤변 등으로 표를 얻겠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싶은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말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대통령감을 찾고 있다.

yidonggu@seoul.co.kr
2017-03-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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