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진의 도시탐구] 히틀러가 판치는 우리 관공서

입력 : ㅣ 수정 : 2017-03-2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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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끔찍한 독재자로는 히틀러를 들 수 있다. 그는 1934년 합법적 선거를 통해 독일 총통에 취임한 후에 전무후무한 독재 통치를 단행했고, 급기야 대전을 일으켜 전 유럽과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 권력의 잔혹함은 600만명의 무고한 유대인을 비참하게 학살한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래 그는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고, 화가나 건축가가 되고자 미술학과와 건축과를 지원했으나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못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혼자 공부해 지식을 습득했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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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이때 쌓은 건축적 식견은 후에 독재 통치 및 권력에 대한 찬양 및 고무의 수단으로 십분 이용된다. 이는 제3제국 건축이라 불렸는데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의 대를 잇는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한 의도였다. 원래 로마 고전주의 건축은 피타고라스 등 철학자들이 만든 철학적, 음악적, 수학적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우주가 수로 이루어져 있고, 숫자의 비율을 통해 만물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음악에서 한 옥타브가 1대2의 진동수 비율로, 도와 솔로 대표되는 5도는 2대3의 비율로 구성돼 있는 등의 원리를 발견해 음향학을 창시했다. 이러한 수학적, 음악적 화음 비율은 시대에 따라 점차 발달하게 되고 건축도 이를 따랐다. 처음에는 단지 평면에서만 가로와 세로 크기를 정할 때에 1대2, 3대4, 2대3 등의 다양한 화성 비율을 적용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공간의 높이에도 기하학적 평균비 등을 대입해 건축물에서 완전한 우주의 조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히틀러의 건축은 겉으로는 고전주의 양식을 차용하면서 핵심적 원리인 수학적, 음악적 비율은 심히 왜곡해 사용했다. 이는 주로 당시 나치의 군수 장관이자 건축가였던 알베르트 슈페어를 통해 시행됐는데 사람을 압도하는 비율로 무력통치의 로마 정신을 히틀러 정치에 반영하고 존속하고자 했다. 1939년에 지어진 총통 관저는 수직적 비례와 공간의 거대함이 얼마나 위압적이었던지 방문했던 폴란드 총리가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히틀러 건축은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베를린올림픽 경기장이다. 나치 제국의 영광과 영원한 존속을 세계에 선전하고, 힘을 과시하는 전형적인 선동 도구로 이용됐다. 영혼을 말살하는 초대형 독재 건축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더 놀랍고 끔찍한 것은 히틀러 건축이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공공건축 특히 관공서 건축에 적극적으로 도입됐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은 물론이고 정부종합청사, 시청이나 구청, 심지어 주민자치센터까지도 하나같이 수직적 위압감과 폐쇄성을 가진 변질된 고전주의 건축 형태와 언어를 가지게 됐다. 이는 독재 권력의 적폐를 감추고 국민에게 무의식적인 복종과 굴복을 종용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이러한 건축은 최근까지 이어져 왔으며,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까닭에 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서울시의 신청사 건립이 세간의 논쟁거리가 됐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3제국이 패망한 후 독일은 독재의 어두운 잔재를 몰아내기 위해 투명하면서도 친시민적인 민주주의 형태의 공공건축을 끊임없이 시행해 왔다. 현재 대선 정국에서 최고의 정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적폐 청산은 히틀러가 차지하고 있는 우리 관공서 건물에서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7-03-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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