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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이덕일의 역사의 창] 3·1 ‘혁명’과 촛불 ‘혁명’

입력 2017-03-22 20:54
업데이트 2017-03-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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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을 받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사실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한국사회가 왕정(王政)에서 다시 시민정(市民政)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왕정식의 통치에, 이원집정부제를 통한 장기집권까지 꿈꾸다가 촛불민심과 1987년 6·10 항쟁 때 시민들이 만든 헌법시스템에 의해서 쫓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즉 시민들이 왕정에 맞서 저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정을 표방하는 뿌리는 1919년의 3·1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8월 28일 한국을 점령한 다음 날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본관이 이번 성지(聖旨·일왕의 지시)를 받들어 이 땅에 부임한 것은 다스리는 생민(生民)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코자 하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장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함부로 망상을 품고 정무 시행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협박했는데, 데라우치가 말하는 ‘망상’이 바로 한국인에 의한 자주 독립 국가 건설과 민주공화정이었다. 일제는 헌병 통치와, 소학교 선생님들까지도 칼을 차고 교실에 들어가게 하는 무단(武斷)통치로 한국인들을 억압했다. 또한 토지조사를 빙자해 전국 각지의 토지를 광범위하게 강탈했다. 이런 폭압 정치 10년에 한국인들이 맨손으로 저항한 것이 3·1 혁명이다. 일제의 총칼에 진압되었지만 3·1 혁명이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임은 1987년 제정된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다.

1919년 4월 12일 중국 상해에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장 선포문에서 “한성에서 의(義)를 일으킨 지 30여일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조직된 임시정부”라고 명시해 3·1 혁명 발발 30여일 만인 4월 12일에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음을 명기했다. 임시정부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함”이라는 것이고 제4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통신·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현행 헌법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 민주공화제를 표방했다.

박근혜 정권이 1948년 건국 운운한 것은 이런 대한민국의 뿌리와 민주공화제의 전통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이 촛불혁명이었다. 현행 헌법은 또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하고 있다. 4·19 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미 1923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탄핵당한 전력이 있었다. 임시의정원은 탄핵판결문에서 “(이승만은)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수입을 방해하였고…대한민국의 임시헌법을 근본으로 부인(‘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보’)”했다면서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라고 선언했다. 3·1 혁명과 4·19 혁명 정신은 1961년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와 전두환이 자행한 1980년의 5·17 군사반란으로 거듭 부인되었다가 6·10 항쟁으로 다시 되살아났고 그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현행 헌법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과 헌재의 대통령 파면권을 준 것은 이 나라가 다시는 왕정으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제도였다.

이제 다시 시민정으로 복귀하는 초입에 있는 대한민국 시민들은 3·1 혁명과 4·19 혁명을 계승한 촛불 ‘혁명’이 소수 정객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해방과 동시에 다시 권력을 장악한 친일세력들과 그 후예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회 각 분야의 적폐를 청산하고 다시는 훼손당하지 않을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지난한 임무가 남아 있다.

2017-03-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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