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문형표, 장관직보다 국민연금 이사장이 훨씬 좋은 자리라 말해”

“문형표, 장관직보다 국민연금 이사장이 훨씬 좋은 자리라 말해”

오세진 기자
입력 2017-03-22 13:38
업데이트 2017-03-22 13:3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법정 향하는 문형표
법정 향하는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확산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물러난 문형표(61·구속기소)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장관 재임 시절 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가 “훨씬 좋은 자리”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실제로 문 전 장관은 2015년 8월 복지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4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국민연금 이사장에 취임했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6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실제로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합병 건에 찬성했다. 이 합병 건은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있어 핵심 작업이었다.

이에 문 전 장관이 장관직 사퇴 이후 국민연금 이사장이 된 것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건을 잘 처리한 대가로 청와대가 ‘보은 인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특검팀은 지난 6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문 전 장관이 2015년 6월 말 안종범(58·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명예퇴직 전까지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을 맡았던 이모씨는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조의연) 심리로 열린 문 전 장관의 재판에서 그가 장관직을 사퇴하기 직전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이 전 실장은 퇴직 전 장관실을 찾아 “저는 가지만 장관님은 계속 열심히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 전 장관은 “나도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이 전 실장의 증언이다.

이 전 실장은 당시 문 전 장관의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전 장관이) ‘공단 이사장이 장관보다 훨씬 좋은 자리’라는 표현을 썼는데, 복지부 공무원 28년을 재직한 저로선 조금 자괴감을 느꼈다”면서 “‘내가 모신 장관 자리가 산하기관의 장보다 못한 자리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이 전 실장의 설명이다.

특검팀은 문 전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어 일을 성사한 대가로 공단 이사장직을 얻은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이 전 실장도 실제로 문 전 장관이 장관직 퇴임 후 국민연금 이사장에 임명되자 “좀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검 측이 “삼성물산 합병 건을 불법적으로 부당하게 개입해 찬성시키고 그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이사장에 임명된 게 아니냐”고 묻자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실장은 문 전 장관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후 정책조정수석)을 두고 복지부 내부에서 돌았던 말들도 증언했다. 공무원들 사이에 “문 장관이 안종범 수석과 하루라도 통화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것 아니냐”, “안종범이 장관인지 문형표가 장관인지 모르겠다”, “문형표가 결정한 것도 안종범이 반대하면 번복한다”는 등의 말이 퍼졌다는 것이다.

이 전 실장은 또 문 전 장관이 삼성물산 합병 건을 내부 투자위원회 의결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고도 증언했다. 원칙적으로 삼성물산 합병 건은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당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찬성 결정을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위 개최 요구가 있었지만 홍완선(61·불구속기소)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를 묵살했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의 변호인은 오히려 ‘복지부 공무원들이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합병 건을 찬성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은 메르스 사태로 떠날 사람인데 그런 자기의 말을 부하 직원들이 따랐겠느냐는 취지다. 그러나 이 전 실장은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 공무원 사회에도 도의라는 게 있다”면서 “조직의 장은 장관인데 장관님을 제쳐 두고 청와대와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