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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이제 누가 ‘이생망’ 청춘 구출기를 써라/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제 누가 ‘이생망’ 청춘 구출기를 써라/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03-10 17:56
업데이트 2017-03-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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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청춘들의 자포자기 풍토 속
기울어진 게임 강요 학생부 전형
교실에서까지 ‘이생망’ 자조해서야
대선 주자들 교육공약 재점검을
수저 세습 깨기는 새 대통령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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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이번 생은 망했다. 화투 패를 다시 섞듯 마음대로 윤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흙수저 청춘들은 그렇게 함부로 자포자기 선언들을 한다. 듣기만 해도 속 쓰린, 자칭 ‘이생망’ 세대.

신학기 중·고교 담장 안에서도 이즈음에는 소리 없는 탄식이 터진다. 이번 학년은 망했다. 학교 버전으로는 ‘이학망’쯤 되겠다.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담임교사의 능력이 희비를 가르는 대목. 그 능력이란 수업을 얼마나 잘하느냐의 역량이 아니다. 담임의 실력은 곧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능력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입시의 대세로 굳어진 현실이다. 담임교사는 입시의 복불복 카드가 돼 있다.

이런 교실 풍경이 개운할 수 없다. 이 께름칙한 풍경에 끼지조차 못하는 학생과 부모는 훨씬 더 많다. 독서, 봉사활동 같은 비교과 영역이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어떤 방식으로 평가되는지, 학생부를 기록해 줄 담임교사와는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 어느 쪽도 없는 부모라면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이한테 해줄 게 없다. 그런 부모의 자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어 입시 게임의 들러리가 되는지 그마저 모른다. 수저를 바꿔 물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이생망’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두 달 안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새 대통령의 자격과 요건을 깨알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절대 부족이다. 대선 후보들은 이런저런 교육 공약을 이미 내놨다. 교실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현실을 제대로 짚는 이는 없어 보인다. 그게 답답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구상이 그나마 ‘비교적 오래, 직접’ 고민한 흔적은 읽힌다. 그는 미래형 교육에 걸맞도록 학제를 뜯어고치겠다고 선언했다. 예산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대학 길들이기에나 재미 붙인 교육부는 없애겠다고 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을 자처해 평소에도 그런 지론은 밝혔다. 개혁 수준의 구상이 빈말은 아닐 것 같다.

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정도의 처방전으로는 불평등 교육 현실을 결코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소개서와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오리무중 입시 게임에 분통 터뜨리는 학부모들이 여전히 도처에 가득하다. 한 표가 아쉬울 대선 주자들이 어째서 무차별 확대일로인 학생부 전형을 손볼 생각이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 중 하나다. 현실을 정말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지난해 로스쿨의 ‘아버지 자소서’에 세상이 떠들썩했다. 들끓는 여론에 사법시험 존치론이 거세게 고개 들었지만 결국 맥없이 꺾였다. 실력자 아버지가 합격의 보증수표가 된 요지경이 드러나자 사시 존치 여론은 한때 85%까지 치솟았다. 교육부는 그런 민심을 정책에 반영할 뜻이 애초에 없었다. 그전에 법무부는 사시 연장 카드를 잠시 꺼냈다가 로스쿨의 집단 저항에 난타를 당했다. 이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

교육의 수저 세습론은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게 공고해진다. SKY(서울·고·연대) 재학생의 70% 이상은 소득 9~10분위의 부유층 자녀다. 정유라의 대학 부정 입학에 분노하는 것은 그가 최순실의 딸이어서가 아니다. 어딘가의 ‘정유라들’이 감쪽같이 시작부터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상실감 때문이다.

‘대세’라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교육관은 그래서 더 갑갑하다. 지난달 노량진 고시학원촌을 찾아 그는 사시 존치 반대 입장에 쐐기를 박았다. 답답한 대목은 고민 없는 논리다. “로스쿨을 만든 참여정부 사람으로서 이제 와서 국가 정책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했다. 말뚝 한 번 박았다고 빤히 기초공사가 흔들린 집을 끝까지 지어 올려야 하는가.

내가 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라도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타포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 암시를 주는 정치라야 스스로 낙오하려는 청춘을 달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버틴다. 교육 현장의 ‘이생망’ 청춘 구출기를 누구든 먼저 써 보라. 새 대통령의 자격이다.

sjh@seoul.co.kr
2017-03-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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