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통합이 되려면/최용규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7-03-0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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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이상 된 분열의 역사
승자의 우월적 DNA 이어져
통합 나선 DJ, 노무현도 실패
통합할 새로운 ‘이념’ 제시돼야
지긋지긋한 분열 끝낼 수 있어
최용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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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규 논설위원

우리는 요즘 우리가 얼마나 극심하게 분열돼 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크고 작은 분열과 대립, 갈등은 그간 수도 없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극명하게 갈라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내면에 내재된 분열의 본모습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이런 극심한 분열도 따지고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분열의 유전자(DNA)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 있었고, 이 DNA가 1300년 넘게 핏속을 타고 흘렀지만 적당히 은폐돼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확실하게 갈리는 게 전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라의 삼국 통일은 영토의 통일일 뿐 정서적 통일은 아니다. 말이 좋아 통일이지 전쟁에서 지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다. 그런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오늘까지 왔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승자의 우월적 DNA는 빈부를 떠나 자자손손 핏속에 흐르고 있었으며, 진 쪽을 하대하고 우습게 보는 것이 이 DNA가 갖고 있는 속성이다. 어디 사람들은 속을 모르겠다느니, 어디 사람들은 뭐 끼고 노는 것만 좋아한다느니 하는 프레임을 누가 만들었겠는가. 전쟁에서 지고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자기 한목숨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사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알아도 모르는 척 입 닫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물산은 풍부하니 세상 일 멀리하고 풍류에 젖어 있었는지 모른다.

이런 정서적 주류 세력이 오늘날 보수요, 비주류가 진보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했다. 김대중(DJ)과 노무현이 이 판을 엎고자 그토록 애를 썼지만 안 된 이유가 쇠심줄보다 더 질긴 주류의 정서, 즉 우월적 DNA를 깨부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통합을 외쳐댄들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DJ와 노무현 말고도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통합을 소리 높여 외쳤고, 대선을 앞둔 지금도 그런 사람이 여럿 있지만 통합의 당위성에만 고개를 끄덕일 뿐 정작 핏속을 타고 흐르는 DNA는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역적 통합은 바닷물 한 번 들이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통합은 우열 없는 정서적 통합이다. 이 난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촛불과 태극기는 언제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지금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광장의 처참한 분열을 끊어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DJ와 노무현의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는 것이 정치 하는 이유라고 했던 안희정이 ‘선의’(善意) 발언을 사과한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노무현 사후 폐족을 자처했던 그가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다름 아닌 미완의 역사에 대한 완성, 즉 통합에 있다고 했다. 박정희에 대한 공칠과삼(功七過三) 평가라든지, 대연정, 선의 발언도 통합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당장 같은 편 쪽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당내 경선이 위태롭다 해서 거둬들일 일이 아니었다. 왜 대통령이 되려는지에 대한 자기부정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보수·진보 양쪽의 협공을 받고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가 김대중·노무현뿐만 아니라 이승만도 박정희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했다.

비록 선의 발언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자기 정치철학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 것이다. 그러나 안희정의 통합도 과거 안철수의 새 정치나 반기문의 정치교체처럼 단지 슬로건에 머문다면 하는 말마다 공격의 대상이 되고, 그의 도전 또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누가 됐든 통합을 기치로 대선에 나갈 생각이라면 정서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이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아닌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 사상과 이념을 의미한다. 이 설계도 안에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하고, 교육·복지·문화는 어떻게 할지를 담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만 선의 발언도 당연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진보와 보수의 지긋지긋한 분열상도 마침내 끝낼 수 있을 것이다.

ykchoi@seoul.co.kr
2017-03-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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