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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이중 고통을 견딜 수 있다면 도전하세요/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심리학 박사

[열린세상] 이중 고통을 견딜 수 있다면 도전하세요/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심리학 박사

입력 2017-02-14 18:12
업데이트 2017-02-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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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심리학 박사
조지선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연구원·심리학 박사
지난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은 자칭 흙수저였다. 동창들 증언에 따르면 60만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그가 “우리 집 가난했다”고 주장한 이유는 뻔하다. 사람들은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을 일단 좋아하고 본다. 이 현상의 심리적 기제가 연예인의 이중 고통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귀인’(attribution)은 ‘귀하신 분’이 아니라 결과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이른다. 예를 들면 유재석이 왜 성공했는지, 그 원인을 찾는 과정이 귀인이다. 심리학자 버나드 와이너에 따르면 성공한 타인에 대한 호감을 결정하는 것은 성공 원인의 통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다. 사람들은 통제 가능한 내적 요인인 노력으로 성공한 이들에게 호감을 갖는 반면, 운이나 남의 도움처럼 통제가 불가능한 외적 요인으로 성공한 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유재석에게 안티팬이 없는 이유는 대중이 그의 성공을 운보다 노력에 귀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연예인이 감내해야 할 첫 번째 고통은 귀인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대중은 일반적으로 연예인의 성공을 노력보다 운에 귀인한다. 또 그들이 일반인에 비해 적은 노력으로 분에 넘치는 성공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아닌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사회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렇다는 얘기다. 다른 직업과 비교해 연예인의 성공은 운이 좌우하는 것처럼 보인다. 벼락 스타의 탄생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호감과 비호감이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그 부정적인 측면에 기여한 것이 운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다. 노력하는 많은 연예인은 참 억울하다.

정말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통제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는 자신의 성공을 귀인하는 상황이다. 좀 과장하면 귀인에 따라 인생이 변한다. 노력해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자신을 대견해한다. 노력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짐을 기대하고 또 노력한다. 노력 귀인은 자존감을 높이고 희망을 주며 행동을 촉진한다. 반면 성적이 운에 달렸다고 믿는 학생은 불안하다. 공부할 의욕도 못 느낀다. 성공을 통제 가능한 노력에 안정적으로 귀인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기초임을 증명한 심리학 연구는 차고 넘친다.

사람들은 통제감을 좋아한다. 오죽하면 ‘컨트롤 광’이란 말이 있을까. 당최 노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딸아이가 이젠 말려야 할 만큼 몰입하는 특별활동이 있다. 신기해서 물었다. 뭐가 그리 재밌느냐고. “컨트롤하는 느낌이 좋아. 일이 착착 돼.” 이 느낌이 핵심이다. 과하면 문제지만 이 느낌에 따라 자아 개념, 미래에 대한 계획, 행동이 달라져서 결국 인생이 달라진다.

이제 연예인의 두 번째 고통이 뭔지 감이 온다. 연예인은 ‘컨트롤 느낌’을 갖기가 참 어렵다. 고정관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성공을 노력보다 운에 귀인하는 것이다. 배우 유해진의 흥행 소감은 늘 한결같다. “나는 정말 운 좋은 놈이다.” 더 들어 보면 겸손을 위한 빈말이 아니다. “피 터지게 노력하는 배우는 많지만 극소수만 성공한다. 많은 부분이 운이다.” 노력의 아이콘인 유 배우조차 이렇게 고백한다. 노력은 기본, 성공은 운이 결정. 연예계의 현실이다.

사실 근거 없이 운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연예인은 이 문제적 심리 상태를 자청한 사람들이다. 연예인 지망생들께 한 말씀 올린다. 성공의 자격 조건은 이중 고통을 견디는 강한 멘탈이다. 운 좋아 성공했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는 능력이다. 노력과 성공의 관계가 매우 희미한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좌절을 거부하고 이론이 예측하는 바를 거슬러 노력을 지속하는 의지다.

연예인만 이럴까. 노력이 ‘노오력’으로 전락한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이 같은 아픔을 겪는다. 미안하지만 답은 같다. 노력할 의욕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어느 한 매체 인터뷰에서 말했다. “버틴다는 것은 완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간을 버텨 내면 기회가 올 것이다. 만화가에게 필요한 재능은 어려운 환경을 버텨 내는 것이다.” 버텨 내는 것. 이 재능이 필요하다.
2017-02-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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