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경계 위에서의 삶

그것은 여기 있으면서도 여기 없다. 그것은 죽지 않았으면서도 살아 있지 않다. 그것은 모순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유령이라고 불렀다. 그는 ‘유령론’ 연구를 통해, 볼 수 있으면서 볼 수 없는 것이 출몰하여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분석한다. “죽음을 향해서가 아니라, 경계 위에서의 삶을 향해, 곧 삶이나 죽음이 그것의 흔적들이며 흔적의 흔적들일 어떤 흔적을 향해, 그것의 가능성이 미리, 현재 살아 있는 것/생생한 현재 및 모든 현실성의 자기 동일성을 어긋나게 하거나 어그러지게 한 어떤 경계 위에서의 삶을 향해.”(자크 데리다, 진태원 옮김,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린비, 2014, 15~16쪽)

다소 난해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등을 연출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신작 ‘퍼스널 쇼퍼’를 이야기하려면, 데리다의 설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사야스는 유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지 않나. 우리는 매일 우리의 환상과 꿈, 두려움과 씨름한다. 이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은 우리의 기억, 잠재의식과의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모두와 관련될 수 있다.” 이렇게 자꾸 유령을 거론하는 이유는 ‘퍼스널 쇼퍼’가 유령이 나오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공포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퍼스널 쇼퍼’는 관객을 섬뜩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섬뜩함의 정체를 사유하도록 부추기는 영화다. 이때 관객의 사유는 앞에 제시한 ‘경계 위에서의 삶’과 연관된다. 삶이 죽음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죽음과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루는 상태로 구성된다는 인식 말이다. ‘퍼스널 쇼퍼’에서 아사야스는 삶과 죽음에 대칭되는 자리에 의식과 무의식을 놓아두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삶과 죽음―의식과 무의식의 ‘문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인공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하는 두 가지 일과도 결부된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모린은 이승과 저승을 매개하는 영매다. 또한 그녀는 모델이 착용하는 의상과 장신구를 대신 구매하는 퍼스널 쇼퍼다. 그런 점에서 모린은 항상 누군가의 중개자이자 대리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이쪽과 저쪽 사이, 경계 위에서의 삶을 산다.

“이렇게 되면 어떤 정신/혼령이 존재한다. 정신들/혼령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고려해야/셈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 이상인 그것들을 고려하지/셈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고려할/셈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이상인 그것을/더이상 하나가 아닌 그것을.” 맨 위에 인용한 부분 다음에 데리다가 쓴 문장이다. 그렇게 보면 유령은 여럿이다. 그중 하나가 모린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9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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