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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인류의 문화적 재화, 전쟁에서 구해라

입력 2017-02-08 17:58
업데이트 2017-02-0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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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배상과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나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약탈당한 문화재와 예술품 반환 문제도 그렇고. 최근 법원 판결로 난감한 지경에 빠진 충남 서산 부석사 불상도 고려시대에 빼앗기고 그것을 다시 훔치는 방식으로 되찾아와 소유권을 두고 일본과 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에이크 ‘신비한 어린 양의 제단화’ 윗 부분(1426~1432). 목판에 유화. 461X350㎝. 벨기에 겐트 성바보성당.
반에이크 ‘신비한 어린 양의 제단화’ 윗 부분(1426~1432). 목판에 유화. 461X350㎝. 벨기에 겐트 성바보성당.
미켈란젤로 ‘성모자상’(1501~1504). 대리석. 높이 200㎝. 벨기에 브루게 성모성당.
미켈란젤로 ‘성모자상’(1501~1504). 대리석. 높이 200㎝. 벨기에 브루게 성모성당.
전후 독일로부터 약탈 문화재를 반환받은 프랑스는 여전히 자신들이 약탈해 온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문화재, 일테면 한국의 직지나 외규장각 의궤는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도 독일도 영국도 일본도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
정준모 미술평론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1889~1945)는 유럽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모아 린츠에 총통박물관을 세울 욕심으로 닥치는 대로 새로운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약탈에 열을 올렸다. 또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그림을 그리는 112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그림을 퇴폐미술이라 낙인 찍어 압수해 팔아서 전쟁 비용으로 충당하거나 불에 태우기도 했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 삶의 흔적인 문화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런 비인간적이며 처참한 전쟁 중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삶의 기록인 문화재, 미술품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1943년 출범한 모뉴먼츠 맨(MFAA)이 그것이다.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13개국에서 모인 350~400명의 인원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문화재와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와 협력하는 한편 그 스스로가 전장에 나가 문화재들을 지키고 회수하는 일에 나섰다.

이 부대는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겨울 하버드대 포그미술관의 폴 색스 부관장이 “박물관과 미술관은 평화 시에도 지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또한 전쟁 시에는 그 존재가 두 배로 중요해진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찮고 사소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궁극적이며 지속적인 가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인류의 예술사, 미술의 역사를 지켜 나갈 ‘특수 기술자’들을 선발해 군에 보내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출범했다.

이들은 약 500만점의 약탈 예술품을 되찾아 전후에 되돌려 주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벨기에 브루게의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작 ‘성모자상’과 겐트의 성바보성당의 반에이크 형제가 그린 ‘겐트 제단화’ 등이 있다. 히틀러는 약탈해 온 문화재들을 1000여곳의 장소에 숨겨 놓았었다. 그리고 패전이 임박하면서 소위 네로 명령을 내려 모든 것을 없애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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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
영화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
영화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2014)은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 MFAA의 활약상 중 특히 알타우제 광산과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이들 작품을 찾아 탈출(?)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는 멋지고 바른 말 잘하는 개념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제작, 각본에 주연까지 맡은 영화다. 실존하는 모뉴먼츠 맨 8명이 등장하는 영화의 출연진은 실로 호화판이다.

조지 클루니는 미술사학자인 지휘자로 분해 전직 미술관장인 그레인저(맷 데이먼), 건축가 캠벨(빌 머리), 화상인 클레르몽(장 뒤자르댕)을 이끈다. 여기에 히틀러가 약탈한 예술품들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클레어 시몬 역을 ‘엘레강스의 교과서’ 케이트 블란쳇이 맡아 그 매력을 최대한 발산한다. 또한 조각가 윌터 가필드로 존 굿맨이 등장하고, 예술품 감정가 프레스톤 셰비츠역에 밥 발라반, 예술 애호가인 도널드 제프리스 중위에 휴 보네빌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로버트 M 에드셀(1956~ )이 쓴 같은 이름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구출되는 조각 ‘성모자상’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면 ‘겐트의 제단화’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한다. 인류의 고귀한 문화적 자산인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이 전쟁으로 파손됐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 그림은 물감에 최초로 기름을 타 사용한 플랑드르의 화가 반에이크 형제의 대표작인 ‘겐트의 제단화’다. 현재 성바보성당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구원의 신비라는 주제를 다룬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작이다. 제단화는 예배 때는 열어 놓고 평소에는 닫아 두는 접이식 그림으로 2단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림의 일부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속 인물 하나하나가 매우 세밀하게 묘사돼 있고 화면의 중심에 양이 배치돼 글을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게 성경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성모자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나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브루게의 부유한 상인이 약 4000플로핀에 구입해서 1506년 교회에 기증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예수를 붙잡거나 그를 보지 않고 아래를 응시하는 도상이다. 이는 제단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암시한다. 마돈나와 예수는 그의 피에타상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옷 주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어 성모의 인자함과 그윽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성모자상은 나폴레옹과 나치에 약탈당했으나 모뉴먼츠 맨들의 활약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1972년 작품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은 뒤 방탄유리에 싸여 약 4.5m 밖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들이 구해낸 예술품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렘브란트의 ‘자화상’,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등 수없이 많다.

이렇게 전쟁 중에 문화유산, 예술품을 보존한 모뉴먼츠 맨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던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이나 덕수궁에서 인민군들이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해서 덕수궁을 지킨 제임스 헤밀턴 딜 등이 그들이다. 최근 영국에서 시리아 등지의 문화재가 전쟁의 혼란 속에서 파괴되고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모뉴먼츠 맨 부대가 창설됐다고 한다. 전쟁도 인간이 벌이고,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2017-02-0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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