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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의 거듭나기] 가정교육 부재국가, 한국

[최준식의 거듭나기] 가정교육 부재국가, 한국

입력 2017-02-05 22:22
업데이트 2017-02-0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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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많은 가정에는 문자도(文子圖) 병풍이 있었다. 문자도란 글자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 것을 말한다. 글자를 써놓고 그 위에 여러 그림을 그려놓는데 이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자가 ‘효·제·충·신·예·의·염·치’이다. 이 8글자를 써놓고 각 글자와 관련된 고사나 설화의 내용을 글자 위에 그려 그림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이 문자도는 ‘효제도’ 혹은 ‘팔자도’라고도 불리는데, 그 뜻을 풀어 보면 효도·우애·충절·교신·예절·의리·청렴·부끄러움이 된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교의 가장 근간이 되는 덕목들이다. 이 그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효’ 자를 보면, 보통 잉어 한 마리가 글자 위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중국 진나라 때 왕상이라는 효자가 계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한겨울에 얼어붙은 강을 깨고 잉어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나타낸다.

이 글자 중에 내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염치’라는 마지막 두 자이다. 이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글자를 보고 성장했던 조선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염치가 있었던 것 같은데 현대 한국인들은 어쩌면 이렇게도 염치가 없는지 놀랄 지경이다. 우리는 지난 연말부터 계속된 ‘국정농단’이라는 희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파렴치한 모습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았다.

청문회에 나온 이들이 보인 후안무치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곧 밝혀질 일인데도 그들은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했다. 누구도 ‘이것은 내 책임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더욱더 가증스러웠던 것은 교수들의 뻔뻔함이었다. 정치인들이 뻔뻔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두꺼운 얼굴로 거짓말을 해대는데 같은 교수로서 나는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내가 있는 학교 교수였고 또 이 학교는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대학이다. 이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주 채플을 듣게 해 정직하고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 대학 교수들이 공중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청문회에 나온 이들만 뻔뻔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일례로 경미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에도 우리는 자기 잘못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부정하는 게 다반사다. 그리곤 모든 것을 남 탓이라고 둘러대지 않았던가. 한마디로 말해 한국 사회는 염치를 완벽하게 잊은 사회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염치를 아는 교육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말에는 앞에서 본 것처럼 인간성을 고양해 주는 8가지 덕목을 글자 그림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교육시켰다. 그래서 조선조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 8가지 글자를 보면서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뇌리에 입력시켰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이 잘못을 했을 때에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런 높은 덕목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한 그림이나 글씨를 걸어놓은 집안은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직 보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는 그나마 ‘가화만사성’이라고 씌어 있는 ‘임팩트’ 없는 액자가 걸려 있는 집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액자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각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옆집 아이보다 공부 더 해라’라는 닦달질밖에 없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성 교육이 없다.

이런 기본적인 인성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는 2차적인 것뿐이다. 그래도 유교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조선에서는 이런 교육이 가능했지만 유교가 스러져가고 있는 지금은 그 자리를 메워 줄 새로운 가르침이 없다. 이제 다시 그것을 세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나는 요즘에 새로운 가치관이 나오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주장하는데 사람들은 사는 게 힘든지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2017-02-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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