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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시간여행] 굴뚝이 상징하던 것들

[이호준의 시간여행] 굴뚝이 상징하던 것들

입력 2017-01-17 18:10
업데이트 2017-01-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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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할머니는 땅거미가 마당을 서성거릴 무렵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땟거리가 떨어져 빈속에 물을 채우고 잠들어야 하는 날에도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가마솥의 물이 와글거리며 끓어오를 때까지, 땔감을 밀어 넣고는 했다. 그 순간, 당신의 표정은 황산벌로 떠나는 계백마냥 무겁고 경건했다.

겨울에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기가 필요 없는 계절에도 불을 지피는 건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남의 산에서 ‘도둑나무’를 해 와야 하는 어린 손자에게는 속 터지는 일이었다. 왜 불을 때느냐고 물으면 “허리가 아파서”라거나 “방이 눅눅해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는 했지만, 둘러대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아프다고 함부로 눕는 법이 없는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는 걸로 그날의 ‘의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바깥마당 감나무 아래 서서 굴뚝마다 연기가 오르는 양짓말, 아니 그보다 먼 볏고개에 시선을 얹는 게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가 하는 일이었다. 작은 몸피가 어둠 속으로 조금씩 녹아들어가 어둠과 하나가 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그 ‘이상행동’을 이해하게 된 건 세월이 한참 지난 뒤였다. 당신은 소년 적에 집을 떠난 아들, 즉 내 삼촌을 기다린 것이었다. 객지를 떠돌던 아들이 지친 몸으로 돌아와 고갯마루에 섰을 때, 자기 집 굴뚝에서 연기라도 나야 한 달음에 달려올 거라 믿었던 것이다. 봉화를 올리듯, 아들을 부르기 위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렸던 것이다.

민초들에게 굴뚝은 연기를 배출하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내 할머니가 ‘봉화’로 삼았던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은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굴뚝의 연기는 ‘그리움’이라는 화인(火印)으로 찍히기 마련이었다.

굴뚝의 기억은 아이들이 자라 객지로 나간 뒤에도 고향을 상징하는 깃발로 가슴마다 펄럭거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어귀에 섰을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면 느닷없이 안도감에 휩싸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아궁이에 묻어 두고 떠난 감자 익는 냄새라도 맡은 듯, 괜히 목이 메고 눈물마저 찔끔거렸던 것이다.

굴뚝에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이 투영되기도 했다. ‘굴뚝 보고 절한다’는 말은 빚에 쪼들려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이웃에게 인사할 수 없어서 굴뚝을 보고 절을 한 뒤 떠난다는 데서 나왔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그 집의 상황을 판단하기도 했다. 연기가 난다는 것은 그 집이 끼니를 해결했다는 뜻이었다.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난장이와 대비되는 거대한 굴뚝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단했던 삶을 마감함으로써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화시대의 비극을 보여 준다.

시간은 언제부터인가 이 땅에서 굴뚝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난방과 취사 연료가 바뀌면서 굴뚝에서 오르던 연기도 사라졌다.

설이 가까워져 오면서 기억 저편에 물러서 있던 ‘할머니의 굴뚝’이 생각난다. 객지를 떠돌다가 돌아와 고갯마루에 선 아들은 이제 무엇으로 어머니의 기다림을 확인할까? 굴뚝도 연기도 없는 고향 집을 바라보다 쓸쓸히 발길을 돌리지는 않을까.
2017-01-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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