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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9. ‘아직도’ 결혼 권하는 사회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9. ‘아직도’ 결혼 권하는 사회

이슬기 기자
입력 2017-01-17 14:39
업데이트 2017-01-1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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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MBC ‘라디오스타’의 광팬이다.

곧잘 ‘결혼’ 얘기가 나오면 화살은 ‘돌싱’ 국진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면 김국진은 곧잘 그 가느다란 팔로 “내 결혼, 내가 알아서 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국진씨의 연애가 만천하에 공개 되고, 김구라가 돌싱이 되고부터는 그 화살은 곧잘 김구라에게로 향한다. 국진에게는 곧잘 퉁박을 주던 김구라가 이제는 열애설 언급에 “아니, 저는 뭐 그런 게 아니라…”라며 딴 말을 한다.

이렇듯 한 번 갔다온 사람들에게도 ‘결혼’ 러시안 룰렛은 마구잡이로 튄다. 하물며 갔다 오지도 않은 이들에게 행해지는 ‘결혼 강권’은 어떠한가. 거의 폭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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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결혼하는 비♥김태희 5년 열애 끝 비♥김태희 커플도 결혼을 한다. 그 5년 새 얼마나 많은 기자들의 “결혼 언제 하느냐”는 질문에 시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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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가 3으로 바뀌니…압박이 더욱 거세지더라

노련한 오빠·언니들이 보면 코웃음치겠지만, 앞자리가 ‘3’으로 바뀌니 확실히 상황은 달라졌다.

노출근노페인(30·여)은 계란 한 판이 된 이래, 어머니의 결혼 압박이 남다르다고 털어놨다. 친구들 결혼식도 엄마 몰래 다녀오는 그녀다. “우리 엄마는 또 엄청 심각하게 보수적인 사람이라서, 여자는 서른 넘으면 인생 끝난다고 대놓고 말함. 우리 엄마의 3단 구조는 ‘여자는 결혼 못하면 인생 망한다 -> 여자는 서른 넘으면 결혼을 잘 못한다 -> 우리 딸이 서른에 결혼에 결판을 못 보면 인생 망한다’ 이거야.”

어머님 논리에 따르면 인생 망하기 일보 직전인 노출근노페인은 오히려 ‘삐뚤어질테다!’ 하게 된다고 했다. “엄마가 그런 얘기 할 때마다 열 받아서 독신으로 살고 싶어져. 왜 그런거 있잖아. 어릴 때도 딱 내가 알아서 숙제 하려는 찰나에 숙제하라고 막 다그치면 짱나서 하기 싫어지는거. 딱 그런 거야.”

‘서른’을 상징하는 계란 한 판
‘서른’을 상징하는 계란 한 판 AI 때문에 요즘 계란 한 판은 상종가다. 그런데 왜 ‘인간 계란 한 판’은 어딜 가나 퉁박을 듣나. 아이러니다.
연합뉴스
멀리 갈 것도 없이 기자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짠내 났던 사회 초년생 때, 자취방에 돌아오면 하소연할 사람이 없어서 겁나 결혼을 하고 싶었더랬다. 그러나 이제 사회 생활도 3년차쯤 되서 적응이 됐고, 10여년 만에 부모님 댁으로 들어온 지금 더 이상 결혼 욕구는 없다. 그러나 아빠·엄마는 과년한 딸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뛰노는 걸 보며, 그리고 집으로 날라오는 남의 딸 청첩장을 보며 하루하루 한숨이 더 늘어 가신다. 나와 부모님 사이의 ‘욕구의 미스매치’쯤 되겠다.

◆ 왜 나를 해치우려고 하나…내가 걸림돌도 아닌데

결혼 압박을 받는 이 땅의 미혼들은 느낀다. 사회도, 가족도 나를 ‘해치우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 팀장을피하고싶었오(31·여)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 결혼이 좋아서 추천하는 게 아니라 나를 치우고 싶어하는 느낌이야”라고 일갈했다. 실제 엄마는 말했다. 시집을 보내야 ‘X차’ 치운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고. 대학을 보내고, 취업을 하고 시집·장가까지 보내야 어버이의 역할을 완수한 것 같은 기분이 들 거라는 거다. 나는 엄마의 평생에 걸친 숙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불순분자’ 미혼 남녀들에게 인구 절벽을 막는 인간 병기로서 활약할 것을 주문하며 꾸준히, 그리고 그악스럽게 결혼을 강권한다. 결혼 과정이나,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살뜰히 챙겨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래서 최근 나온 정책은 앞으로 3년 이내에 결혼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100만원의 세금을 깎아준다는 거다. 그러나 한 웨딩컨설팅 업체가 조사한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 비용만 2억 7400만원에 이른다는데, 2억 7400만원짜리 결혼을 2억 7300만원에 하려고 덤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국어사전에 찾아 보면 ‘해치우다’의 뜻은 ‘1. 어떤 일을 빠르고 시원스럽게 끝내다. 2. 일의 방해가 되는 대상을 없애 버리다’다. 아무래도 여기서 사회가 미혼남녀를 보는 인식은 2번에 가깝지 않나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난다면!

그러나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대세인 것처럼,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보다 현재의 내 삶에 집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 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결혼이라야 결혼을 하겠다는 거다. 남편·아내 혹은 사위·며느리로서의 삶에 매몰되거나, 누군가의 아빠·엄마로서 매몰돼 사회가 요구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에 맞추기 급급하는 결혼이라면 절대 사절이다.

비혼 인구도 많이 생겨나는 요즘이지만, 기자는 웬만하면 누구와 같이 살고 싶다. 현실적으로 백세 시대에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 수 없다 하더라도 만인 앞에서 ‘한 사람만 사랑해 보겠노라’고 맹세하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는 숭고하다는 고리타분한(?)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는 결혼과 함께 생산되는 각종 ‘역경’에도 불구하고,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함께 만들어 갈 사람을 찾는 여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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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빈, 이나영을 만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절로 될까. 2015년 강원도 정선의 한 밀밭에서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린 배우 이나영(왼쪽)과 원빈.
이든나인 제공
연애 3년차에 접어든 결혼은내가알아서할게(29·여)는 방금 회사 화장실에서도 들었다. “XX씨, 올해는 국수 먹게 해주는 거야?” 결혼은내가알아서할게의 대답은 “서울에 집 사줄 것도 아니면서 말들이 많다”다.(입밖에 내진 못했지만) 바로 그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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